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주후 2004년 10월 30일

‘할 일’을 찾기 전에


 

“만일 내가 비라면 물이 없는 곳으로 갈거야. 그곳 사람들에게 ‘내가 곧 갈게’ 하고 말할 거야. 그래서 그들이 내미는 그릇들을 물로 가득 채워줄 거야.” 인도 소녀 수미트라가 쓴 글입니다. … 만일 내가 비라면 나도 수미트라와 함께 물이 없는 곳으로 갈 겁니다. 만일 내가 옷이라면 세상의 헐벗은 아이들에게 먼저 갈 겁니다. 만일 내가 음식이라면 모든 배고픈 이들에게 맨 먼저 갈 겁니다.

- 김혜자(굶주린 아이들을 위한 모금 연설에서) 김혜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오래된미래, 2004년), 9쪽에서 재인용.



고등학교 시절,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삶’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시 입시를 앞둔 현실이 좀 버겁기도 하였지만, 나는 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싶었다. 그 당시 ‘당장 죽어도 난 천국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고통과 슬픔과 무거운 짐이 많은 이 땅에서의 삶을 연장하는 것보다 지금 죽어 천국에 가는 것이 내게는 훨씬 유익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자칫 잘못하면 현실도피로 빠질 뻔한 이 생각의 끝에 내린 결론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당시 중·고등부 문집에 실렸던 교회 목사님의 인터뷰와 또 여러 가지들이 이런 결론을 내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은 또한 신앙의 선배 바울 사도의 고민이자 결론이기도 했다.(빌1장 22-24절)


이후로 나는 내가 이땅에 살면서 해야할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회개혁’인 줄로 알았다. 그래서 언론에 뜻을 두고 대학신문기자를 하기도 하고, 그리고 문학에 뜻을 두고 열심히 시를 읽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 가지를 통해 ‘사회개혁’ 이전에 ‘사람을 바꾸는 것’이 나의 ‘할 일’임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난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의 이 자리에 서 있다. 교회에서 청년들을 ‘전도사’라는 직분으로 섬기고 있다. 그런데 아직 나의 ‘할 일’ 즉 ‘사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본질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위의 한 인도 소녀가 말한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비’가 본질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물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옷’이 본질적으로 해야할 일은 헐벗은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이 본질적으로 해야 할 일, 곧 사명은 굶주린 이들에게 가서 그들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사명’은 우리의 ‘본질’ 즉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즉 내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소방관은 불을 끄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이 할 일이다. 요리사는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사명이다. 공무원은 맡은 분야에서 공정하고 지혜롭게 행정을 처리하는 것이 사명이다.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입학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도 1년정도 학원강사를 해보았던 터라, 저녁시간을 활용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리라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막상 신대원에 입학하고 보니 해야할 공부와 사역이 정말 많았다. 그것만해도 다른 데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물론 재정적 필요도 있었지만, 난 결국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학원 강사’로 일하는 것은 나의 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면 재정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겠지만, 공부와 사역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원강사가 아닌, 신학생이며 전도사였다. 그래서 난 재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나의 본질적인 사명인 공부와 교회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감사하게도 3년 동안 한 번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미뤄본 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여러 방법으로 채워주셨다.

많은 사람이 ‘나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질문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해야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 ‘내가 해야할 일’이 결정된다. 그것이 나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과 본질적인 사명은 결코 하나님과 떠나 결정되어 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이시고, 지금도 내게 생명을 공급하고 계시는 주인이시자,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이고 나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찾기는 항상 주님 안에서 진행되어져야 한다. 그러할 때 내가 서지 않아야 할 곳에 서고, 내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보면 참 간단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참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 어리석은 질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의 뿌리를 지탱해 주는 아주 본질적인 요소이며, 과정이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고 넓은 것부터 시작하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주님의 제자다’라는 기본적인 명제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조금씩 질문의 폭을 좁혀가며 구체적으로 주님께 질문하라. ‘주님 저는 구체적으로 누구이며,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게 해주신 모든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재능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장 13절)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안에 어떤 소원을 두셨는 지를 알아보는 것도 유익하다. 어떤 일이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가 찾아 보자.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자신의 욕망과 하나님께서 두신 소원을 분별하는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기준으로 삼아 기도하고 묵상하며 신중하게 분별해 나가야 한다.


조급하지 않게, 인내하며 주님의 대답과 인도하심을 기다리자. 그러면 주님의 때에 분명히 말씀하시고 보여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