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유독 이 책을 좋아했다. 지금은 이것보다 좀 더 글자가 많은 책을 읽지만 한 동안은 거의 매일 밤마다 이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어느날 곰곰이 아빠가 곰곰이에게 선물을 사 주었는데, 그 안에는 맛있는 왕사탕이 다섯 개 들어 있었다. 기분이 좋은 곰곰이는 사탕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친구들이 다가와 사탕을 나누어 달라고 하자 마음씨 좋은 곰곰이는 친구들이 달라는 대로 한두 개씩 나눠 주었다. 그러다보니 정작 곰곰이는 사탕이 하나도 남지 않아서 시무룩해졌다. 그걸 보고 처음에 두 개를 얻었던 꿀복이가 다시 하나를 곰곰이에게 주어서 모두 사탕을 입에 하나씩 물고 즐거워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지는 않는데, 이 책의 내용이 종종 생각난다. 얼마 전 예배 시간에 "나의 생명을 주님께 모두 드리겠습니다."는 익숙한 내용의 찬양을 부르는데, 문득 익숙하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이십 대에 이런 가사의 찬양을 부를 때에는 정말 주님께 내 삶을, 내 생명을 온전히 드려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이 일어났다. 그런데 오십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실제로 내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생명이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찾아와 살짝 당황스러웠다. 반 이상 비어 버린 곰곰이의 사탕봉지처럼.

유한한 이 땅에서의 생명은 시간이며, 시간은 생명이다. 나의 수한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끝나면 이 땅에서의 나의 생명도 사라질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사탕 봉지 속에 시간이라는 알사탕이 몇 개나 담겨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 삶은 그 사탕을 나눠주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교인들에게, 또 내게 시간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사탕을 나눠 주듯이 시간을 나눠 준다. 목회는 성도들에게 내 시간을, 내 생명을 나눠주는 것이고, 강의나 글쓰기나 영성지도나,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손을 내미는데, 거절을 잘 못해서 가능한 작은 사탕 하나씩이라도 나누려고 노력하다 보니, 늘 바쁘고 일이 많다. 게다가 뭘 하든지 속도가 느려서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제 사탕봉지가 반 이상 비어 버렸으니, 남은 사탕이 몇 개인지 알 수 없지만, 하루하루 낭비 없이, 인색함도 없이 나눠야 할 곳에 제대로 나누어 주는 것 그것이 요즘 내가 가진 높은 목표다. 그리고 꿀복이가 다시 준 사탕을 곰곰이가 기쁨으로 받은 것처럼, 나 역시 나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나누어 주는 고마운 이들의 생명을 당연함이나 부담스러움이 아니라 고마움으로 겸손하게 받아야겠다. 원래 사탕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니까. 그래야 더 달콤하고, 즐거움이 넘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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