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 가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4박 5일 동안 한남대학교에서 포이메네스 목회자 영성수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할 일이 많은 데다가 이번 주는 출장(?)으로 거의 한 주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틈틈이 이것저것을 하리라 마음먹고 아내의 노트북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서울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속에서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파우치에 잘 담아놓은 노트북을 정작 여행용 가방에는 넣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단지 어댑터만 휴대폰 충전기와 사이 좋게 가방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기차에서 노트북으로 권두언을 쓰는 것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앞만 바라고 멍하게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좌석 등받이에 꽂힌 KTX 매거진의 표지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천의 한 숲길이었습니다. “맞아, 어머니의 고향이 김천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서 저의 머릿속에 한 소녀가 김천의 숲길을 걷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아가씨일 때의 모습은 흑백사진이 남아 있어 본 적이 있지만 어린 시절의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은 그저 꿈결 속처럼 희미했습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어머니께 여쭈어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시겠지만 그것은 매우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뿐이겠지요. 특히 유아 시절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글을 읽으시는 4여 회원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요즘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부모님들이 아이의 사소한 일상까지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두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아이들의 어린 시절 전체가 아니라 단편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어린 시절 전부를 정확히 기억에 간직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 형질이 이루어지던 때부터 그리고 장차 우리가 늙어 죽을 때의 모습까지 그 기억 속에 간직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기억은 과거를 돌아볼 뿐이지요. 그러나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 모두 현재형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모든 일생이 하나님의 기억 안에 생생하게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기억 안에서 여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매우 불안정하고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다가 보면 종종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아시는 하나님의 기억, 또는 생각 안에서 하는 여행은 비록 우리 앞에 놓인 것이 미지의 세계, 불확실한 미래라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갈 수 있습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생각하시며 돌보시는데(시 8:4), 그 생각이 많아 셀 수가 없으며(시 40:5), 매우 깊으시다고(시92:5) 노래합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많은 생각, 그분의 기억은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세심한 돌보심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4여전도회 회원님들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가있습니다. 우리 교회 갈보리찬양대 솔리스트이신 소프라노 한나형 님이 부르신 “여정”이라는 곡입니다. “나의 눈가에 주름이 지고, 어느새 눈물이 많아 졌습니다. 잠시 눈 감고 뜬 것 같은데 어느새 여기 있습니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지금까지의 모든 인생 여정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나의 삶이 마치는 날까지 앞으로의 여정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또한 여러분들의 노래가 되시길 바랍니다. 

 

곧 기차가 대전역에 도착합니다. 이제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영락수련원이 아니라 지역에서 하는 첫 번째 포이메네스 영성수련이라는 미지의 승강장에 발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기억 안에서 새로운 여정을 걸어갑니다.


영락교회 제4여전도회 월례회보 〈섬김〉 2022년 7월호에 실은 권두언을 옮겨 놓는다.

'바람소리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마귀 새끼를 보는 눈  (0) 2022.07.14
마지막과 처음  (0) 2020.12.06
위험한 예배  (0) 202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