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본문과 묵상 안내를 옮겨 놓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 안내를 받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실천 방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공유하는 유투브 동영상의 설명란에 기록된  안내를 참조하십시오.

 

 


| 읽기 |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 묵상하기 |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예고 이후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따로 주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때에 자신들을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 청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때가 언제인지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마가는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예고 바로 뒤에 이 이야기를 배치함으로써 두 제자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명예를 향한 자신들의 욕망으로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예수께서 당하시게 될 괴로움과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하였습니다. 


그들의 요청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가 무슨 부탁을 드리더라도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부탁을 하기도 전에 이제 자신들이 하게 될 요청을 반드시 들어주기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당당함, 또는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 사촌 관계일 수도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혈연을 특권 삼아 예수님께 이러한 강청을 하는 것입니다. 또는, 이제 곧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될 텐데, 그 전에 자신들의 자리를 보장받아야겠다는 조급함과 불안감 때문에 이렇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메시야의 왕국이 확립되기 전에 무시무시한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유대 전승을 떠올리고서는 자신들이 과연 그러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예수님을 계속해서 따라야 하는 것인지 손익을 계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야고보와 요한 요청은 자신들을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을 마시고, 예수님께서 받으실 세례를 자신들도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지와 욕망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중에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기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그들도 주님을 따라 그 고난의 잔을 마시고, 그 세례를 받게 됩니다. 곧,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요즘 나는 주님께 어떤 요청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왜 그러한 요청을 드리고 있습니까? 나에게는 제자들과 같은 무지나 헛된 욕망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한 나에게 주님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주님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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