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별명은 ‘책벌레’였다.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고, 나는 그 별명을 좋아했다. 아이들과 밖에서 딱지치기나 술래잡기를 하며 노는 것보다 집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클럽 활동으로 도서부에 들어가 도서관 청소부터 시작하여, 독서토론회에 이르기까지 책과 관련된 일이면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었고, 심지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책을 몇 권 쓰기도 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탐독하였고, 또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은 단연 성경이다.  


성경을 읽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데,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 성장 시기에 따라 주로 사용한 방법들이 구별된다. 어린 시절에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지는 않았지만,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성탄절 발표회나 성경고사 준비를 위해 그때 그때 필요한 구절들을 ‘암송’하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는 학습과 세례를 받기 위해 먼저는 신약성경을, 이어서 구약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을 완독해야 했는데, 그 조건을 채우기 위해 말씀의 의미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눈으로 글자들만 재빨리 훑어가며 책장을 넘겼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이후 말씀을 보다 진지하게 읽기 시작한 것은 ‘큐티’(Quiet Time)라는 말씀 묵상 방법을 배우면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무거운 책가방에도 항상 큐티책을 넣어 다녔고, 그 습관은 청년 시기에도 이어져 (물론 불성실한 때도 있었지만) 매일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말씀 묵상을 먼저 하고 기도했다. 관찰, 해석, 적용의 귀납적 성경연구방법을 활용한 큐티는 날마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으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 유용한 방법이었다. 신학대학원 입학 준비를 위해 성경 통독도하고, 암송도 하고, 암기 위주의 지적인 공부도 하였지만, 큐티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친밀한 만남을 갖는 주된 수단이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는 점점 큐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신학 공부를 하며 마음이 차가워지거나 너무 바빠져서가 아니라 새로운 말씀 묵상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는 ‘거룩한 독서’이다. 거룩한 독서는 고대로부터 내려져 오는 말씀 묵상과 기도 방법인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번역한 말이다. 라틴어 ‘렉시오’(lectio)는 ‘읽기/독서’라는 뜻의 명사이고, ‘디비나’(divina)는 ‘거룩한/신성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형용사이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거룩한 독서’, ‘거룩한 읽기’, ‘성독’(聖讀)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보다 쉽게는 용어의 문자적 의미보다 내용을 살려 ‘말씀묵상기도’라고 일컫기도 한다. 


기독교 문헌에서 라틴어 ‘렉시오 디비나’라는 용어는 ‘서방 수도원 제도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Benedictus: c.480-c.547)의 수도 규칙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런데 그는 이 규칙서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단순히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 그 방법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렉시오 디비나가 이미 기독교 수도 전통에서 오랫동안 실천되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딕투스 이전의 교부들의 문헌에서도 ‘거룩한 독서’로 번역될 만한 그리스어 용어가 발견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 뿌리는 신·구약 성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룩한 텍스트로 여기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이렇게 오랫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실천되어 온 거룩한 독서는 당연히 원래부터 한 가지의 고정된 방식으로 행해지지는 않았다.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어왔고, 독서 자료도 신·구약 성서 외에도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부들의 글도 선택해서 읽었다. 그래서 12세기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장 귀고 2세(Guigo II, ?-c.1188)는 이를 단순하게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거룩한 독서를 (1) 읽기(lectio), (2) 묵상하기(meditatio), (3) 기도하기(oratio), (4) 바라보기(contemplatio)의 네 가지 요소로 정리하여 소개하였고, 오늘날 대부분이 이 방식을 따라 거룩한 독서를 실천하고 있다. 


그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먼저 ‘읽기’는 말 그대로 말씀을 읽는 것이다. 비록 성경의 각각의 책들은 오래전에 특정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기록되었지만, 지금 읽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실 것을 기대하며, 마치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를 읽듯 말씀을 읽는다. 이때는 이성을 사용하여 말씀을 분석하고, 연구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말씀을 읽으며 지금 내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나 단어가 무엇인지 느껴본다. 같은 본문이라도 자신의 삶의 정황이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구절이나 단어가 마음에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거룩한 독서는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는 것, 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나를 읽는 것이라 표현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반복해서 읊조리며 묵상을 시작한다. ‘왜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 걸까?’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라는 질문들을 가지고 말씀을 마음 깊은 곳으로 가져가서 반복해서 읊조리며 묵상한다. 이때는 이성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말하는 소리, 또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열고 기울인다. 


그렇게 하다 보면, 묵상은 저절로 기도로 이어진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그것이 기쁨과 감사와 같이 긍정적인 것이든지, 슬픔이나 원망과 같이 부정적인 것이든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이때 반드시 기억할 것은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매우 잘 알려진 정의이다. 곧,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말씀드리기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과의 대화, 곧 기도가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면, 이제 거룩한 독서의 마지막 순간이자 큐티와 가장 분명히 구분되는 독특한 순간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는데, 그것은 ‘바라보기’이다. 두 사람의 연인이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그들은 만나서 서로 할 말을 다했다고 즉시 헤어지는 법이 없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도 그들은 얼마 동안 함께 머물며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을 나눈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넘어선 깊은 차원의 사랑의 교감이 이때 일어난다. 거룩한 독서에서 바라보기도 이와 비슷하다. 읽고, 묵상하고, 기도할 때 사용하던 모든 생각과 말을 내려 놓고, 그저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물며 사랑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본다. 그러면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만나 깊은 사랑의 연합을 경험한다. 


이와 같은 거룩한 독서의 네 가지 요소들은 반드시 순차적으로 일어날 필요는 없지만, 이 네 가지가 모두 다 필요하다. 귀고 2세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말한다.

 

묵상 없는 독서는 메마르며,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묵상 없는 기도는 냉담하고 기도 없는 묵상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기도가 열정적일 때 바라봄에 이르는 것이지, 기도 없이 바라봄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그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수도승의 사다리》, 12장).

 

독서와 묵상과 기도와 바라봄, 이 네 가지는 거룩한 독서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유롭게 일어난다. 그래서 흔히 거룩한 독서를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추는 ‘춤’으로 비유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거룩한 독서의 실천 방법은 함께 싣는 그림에 보다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다. 이 그림은 필자가 영락수련원에서 ‘거룩한 독서 수련’을 안내할 때 설명을 위해 종종 칠판에 그리는 것이다. 


영락수련원은 그 설립부터 ‘말씀묵상기도 수련’, 곧 거룩한 독서를 가르치고, 안내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다. 영락수련원에서 주최하는 정기수련과 각 부서의 요청으로 여는 위탁수련을 통해서 거룩한 독서를 안내하며 실천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수련을 할 수 없었던 때에는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독서를 실천할 수 있도록 거룩한 독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영락수련원 채널을 통해 나누기도 하였다. 거룩한 독서는 결코 어렵지 않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사귐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만 있다면, 성령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도우실 것이다. 

 

*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렉시오 디비나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누르시아의 베네딕트 지음, 권혁일·김재현 옮김, 『베네딕트의 규칙서』(서울: KIATS, 2011), 91. 

** 렉시오 디비나의 성서적, 역사적 배경을 보다 더 자세히 알고자 하면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권혁일, “거룩한 읽기,”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서울: 두란노, 2017), 33-53.


- 영락교회 〈만남〉(2023년 6월호)에 “‘거룩한 독서’ 어렵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 잡지에 인쇄되어 나간 글은 편집부에서 분량도 줄이고 윤문도 많이 해서, 이곳에는 송고한 원고를 올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