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생각

 


명절이 좋은 점은 그동안 잘 만나지 못 하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생활하다 보니,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더욱 뜸해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명절 연휴에 주일이 끼는 바람에 집에 내려가지 못 할 때가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큰 아버지의 머리는 드문드문 눈으로 덮인 산 마냥 흰 머리가 제법 덮여 있었고, 촌수를 따지면 5촌이 되는 조카들은 앨범이 몇 장 뜯겨져 나간 것처럼 훌쩍 자라 있었다. 설날 대목을 보겠다고,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3일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과일을 팔러 다니던 사촌형 부부가 얼굴이 언 사과처럼 빨갛게 얼어 들어오는 것을 보며, 그동안 내가 가족들에게 참 무심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이 말씀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보면, 친척들을 잘 돌아보지 않는 나는 변명의 여지없이 참 악하고 나쁜 사람임이 틀림없다. 멀리 있고, 잘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지만, 피를 나눈 가족과 친척을 돌아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특히 믿는 사람은 더욱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돌보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멀리 있는 경우도 그렇고 또한,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어서도 안 된다. 이처럼 명절은 바쁜 삶으로 소원해진 가족과 친척들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는 날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와 반대되는 말씀도 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10:37)

 

이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자기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읽는 이들을 당혹하게 한다. 그러나 실은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보다 오직 주님을 더욱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누구보다 잘 실천한 사람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시다. 주기철 목사님은 당신이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인해 가족까지 엄청난 핍박과 심적, 육적,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고자 하는 의지와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 그 대가로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은 목사님이 가족들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주기철 목사님은 누구보다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러나 당신은 오직 가족을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 맡겼을 뿐이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가족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셨고, 지금 현재 생존해 계시는 주기철 목사님의 2, 3세 후손들이 이를 간증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다는 것을 핑계로 결코 가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부모님께 드릴만한 것이 있어도 고르반,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부모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악한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예수님은 강력히 비판하셨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 그리고 선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들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가족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혹시 부모나 가족, 친척들에게 인간적인 약함이나 부족함이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용납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올 해 더 큰 사랑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04년을 시작하며 올 해 가지는 목표는 무엇인가? 올 한 해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하여, 가족과 이웃들을 향해 더욱 큰 사랑을 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올 해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떨까?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부관계나, 부모관계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관계와,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의 가족관계에 많은 불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고 용납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세상에 대안적인 가족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일은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2004. 1. 24.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2004. 1. 18

하나님을 체험하여 아는 사람

 

권혁일 전도사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이러한 욥의 고백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욥은 이전에도 하나님을 잘 알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욥은 의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었으며, 예배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누구보다도,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욥이 엄청난 고난을 겪은 후, 욥기 마지막 장에서 내가 전에는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지만,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뵙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욥이 눈으로 사물을 보듯이 하나님을 뵙게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욥의 고백은 욥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분명히 체험하여 알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 또는 피상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과 분명히 체험하여 아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이라면,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 수 있고, 예배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과 피상적인 경험을 훨씬 넘어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분명히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반응할 때 아주 확실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한국교회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비단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개신교의 위기이기도 하다. 개신교 신학자 도날드 블러쉬(Donald G. Bloesch)는 그의 책 《경건의 위기》(The Crisis of Piety)에서 오늘날의 신앙의 위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시대는 현재 스스로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진리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을 가지지는 못하고, 단지 이론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시대는 더욱 하나님을 체험하여 아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래서 이번 14부예배의 주제인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는 우리에게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출애굽기 3818절에 나오는 이 말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영광을 봄으로 말미암아 확실한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된 동기가 된 기도이다. 이처럼 우리도 4부예배를 비롯한 예배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를 간구하자. 이것은 곧 우리의 신앙이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체험하여 분명히 깨달아 아는 수준으로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할 때 개인의 신앙의 성장과 교회의 부흥과 나아가서 한국교회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체험하여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는 더욱 살만한 곳이 되어 갈 것이다. 그러므로 올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 더욱 간절히 기도하자.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소서! 주님을 분명히 체험하여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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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닦는 사람, 녹을 닦는 공동체

 

 

피켓맨(men)이 나타났다!

 

토요일과 주일이면, 교회 곳곳에서 피켓을 들거나 목에 걸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펩시맨도 수다맨도 아닌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어떤 민감한 정치적 문제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 자가용 쉬기 운동을 홍보하는 공무원들인가? 그들이 누구인지는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하나님은 지각하지 않으십니다

 

이쯤이면, 아마 다들 대강 눈치를 챘을 것이다. 피켓맨들은 바로 예배 지각 안 하기 운동을 하고 있는 청년1부 임원들이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을 위해서 홍보부장 희정이와 회장 노영이가 밤늦게까지 피켓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젠 청년1부에서 제법 나이가 지긋해진 총무 6또래 재윤이와 부회장 5또래 미혜가 토요집회 광고시간과 청년부실 입구에서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그리고 또 여러 임원들이 주일 3부예배를 전후하여 교회입구에서 역시 피켓을 들고, 매고 서 있다. 아직은 좀 쑥쓰러워서 아무 말 없이 그저 들고 있기만 하지만, 추운 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홍보하는 모습이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렇게 임원들이 홍보를 하는 이유는, 토요집회와 4부예배에 지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작년에 심할 때는 토요집회 시작할 때에 찬양팀을 빼고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는 사람들만 앉아 있을 때도 있었으며, 4부예배 역시 겨우 이십여명 앉아서 예배를 시작할 때도 있었다.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늦게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습관성 지각증후군에 걸린 이들이다. 노영이가 뽑은 표어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일주일에 10분 지각하면 일년에 520분이란다. 이것은 꼬박 3일하고도 12시간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인데, 우린 토요집회와 주일 4부예배, 이렇게 두 번의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까 곱하기 2하면 7, 즉 일년에 일주일은 꼬박 그냥 지각으로 시간을 버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보다 일년에 꼬박 일주일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지각하여 분주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일찍 와서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하는 것과 그 깊이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예배에 10분 지각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임원들이 이렇게 체면을 따지지 않고, “예배 지각 안하기캠페인을 열심히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달 후 3월부터는 또 다른 새로운 캠페인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각은 무서운 습관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이미 몸에 배여 버려서 의식적으로 잘 깨닫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동을 말한다. 물론 좋은 습관도 있지만, 나쁜 습관은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을 파괴해 간다.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나쁜 습관은 더욱 무섭다. 지각 외에도 우리 삶에는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많은 해를 끼치는 나쁜 습관들이 많다. 그래서 청년1부 임원들이 올 한해 나쁜 습관들을 하나하나 고쳐가기 위해 두 팔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것이 바로 예배 지각 안 하기캠페인과 두 달을 주기로 계속될 여러 캠페인들이다. 이것은 곧 방지일 원로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닳아 없어지더라도 녹슬지 않겠다라는 자세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비록 아직은 젊지만, 우리 삶에서 녹슬 듯이 생기는 나쁜 습관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기에 힘쓰겠다는 숨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듬직한 임원들의 수고와 사랑스런 청년1부 형제·자매들의 참여 덕에 지난 주와 이번 주 토요집회는 지각자가 눈에 띄게 줄어, 집회 참석 인원의 60% 정도의 지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이번 예배 지각 안 하기캠페인과 앞으로 이어질 여러 캠페인들을 통해서 우리 청년1부에 이보다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 날 것이 기대된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것도, 우리가 함께 할 때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우리 모두 녹을 닦자. 올 한해 우리 모두, 자신을 성찰하고 나쁜 습관을 바꾸는 이 운동에 다함께 참여하자. 그리하여 나 자신과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빛을 온전히 나타내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교회가 되도록 다 함께 힘쓰자


2004. 1. 17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피에 대한 책임감

날적이 2003. 12. 24. 17:00

어제 모임이 있어 신촌에 갔다가, 우연히 헌혈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O형 혈액 급구"

유리문에 붙은 종이를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들어갔지요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용지를 작성했는데, 마지막으로 담당하시는 분이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AIDS 검사를 위해 헌혈을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헌혈대에 누워, 제 몸에서 나와 삽시간에 팩을 채워가는 붉은 피를 보았습니다. 
이제 이 피가 몸이 약한 누군가의 몸 속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피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흡연이나, 음주를 하지는 않지만 이 피에는 제 삶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제 삶이 혼탁해지고, 죄로 오염될 때에 역시 이 피도 혼탁해지고, 더럽혀지며, 제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할 때에 이 피 역시 어느때보다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것입니다.

저는 맑고, 깨끗한 주님의 피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피는 세상의 그 어떤 피와 비교할 수 없는 값지고, 깨끗한 피입니다. 
그 주님의 피가 제 몸 속에서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한 상태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가도록 더욱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편 11절

주님이 우리에게 맑은 피를 수혈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새삼 피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2003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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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 칼럼

2003. 12. 21.

 

선물을 준비하셨나요?

 

 

성탄절은 유난히도 선물과 관련이 깊다. 먼저, 하나님께서 스스로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으며, 별을 연구하던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 뵙고, 귀한 선물을 드렸다. 그리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믿거나 말거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선물을 나누는 마음씨 좋은 교회와 사람들이 있으며, 또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그리고 교회에서 선물을 교환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탄절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온 누리에 기쁨이 가득한 때이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도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날이 성탄절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세상 사람들은 성탄절에 왜 즐거워해야 하는 지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에로 크리스마스라는 불경한 제목(?)의 영화도 곧 개봉된다니 참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개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까 따라 웃고, 사람들의 웃는 모습이 웃기다며 더 오버해서 웃는 격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왜 우리가 성탄절에 즐거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릴 사명이 있다. 특별히 IMF사태 이후, 어느 해보다 우울하고 어두웠던 올 2003년을 마감하며, 우리가 기뻐할 이유가 되시며,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님을 알려야 한다. 24일 밤, 청년1·2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새벽송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포하는 시간이 되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며 준비하자. 또한 나의 주변에 기쁨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내용을 카드로 담아, 정성껏 준비한 선물과 함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선물하자. 언젠가는 그들도 우리의 기쁨의 대열에 동참하여 함께 손을 잡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리라!

 

마지막으로, 주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자. 나를 위해 참 사람이 되신, 참 하나님이신 주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하자. 선물의 초점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있음을 기억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것들을 주께 질문하며,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는 기간이 대강절이다. 주님은 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주셨다. 비록 작은 것이나마 나의 전부를 주님께 드릴 때 이 황량한 2003년의 끝을 주님께서는 귀한 은총으로 채워 주시리라.

 

확실히 우리는 우리가 이웃에게, 그리고 주님께 드리는 선물보다 훨씬 많은 선물을 받았고 또, 받고 있는 자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