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23. 토. 


오후 내내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지쳐 뻗어 있다가 저녁이 되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산책에 나섰다. 한번씩 귤색의 석양을 바라보아야 마음에 비타민이 흡수된다.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이 나를 그리운 이에게로 데려다 주고, 그리움은 나로 하여금 외로움에 쓰러져 있지 않고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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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의 팀블로그(spirituality.co.kr)에 쓴 글을 옮겨 놓는다.



토마스 머튼 윌리엄 쉐넌 (4)

'파라다이스 여행' '내적 체험'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http://spirituality.co.kr/282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http://spirituality.co.kr/288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이 달은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 내적 체험과 이 책에 대한 해설이 담긴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의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를 소개합니다. 



1. 내적 체험 (The Inner Experience: Notes on Contemplation. Maryknoll, NY: HarperOne, 2003.)

 

 관상(contemplation)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머튼이 수도 생활 초기부터 가져왔던, 그리고 글과 강연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대답해 왔던 중요한 질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질문을 다루고 있는 그의 첫 번째 작품은 《관상이란 무엇인가What is Contemplation?》(1948)라는 책이고, 마지막 작품은 이 책을 개정한 《내적 체험》(1968)입니다.[각주:1] 사실 전작의 개정판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내용과 분량에 있어서 관상에 대한 머튼의 성숙한 사상 이 《내적 체험》에 담겨져 있습니다. 머튼은 이 책에서 이전보다 넓은 관점에서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가 그동안 동양 종교를 연구하거나 현대 과학기술 사회에 대해 숙고하며 얻은 통찰들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머튼은 선불교의 사토리(satori)를 언급하며 자연 질서 안에서 거의 "임상적으로 완벽한" 내적 자아 실현의 예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토리는 "영혼의 내핵이 폭발하듯 열려서 가장 깊은 자아를 드러내는 영적 깨달음"이라고 이해합니다(7). 그에 비해서 기독교의 신비 체험은 "내적 자아를 인식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초자연적인 믿음의 강화에 의해서 우리의 내적 자아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12). 다시 말해 기독교적 관상은 내적 자아의 깨어남을 통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접촉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을 넘어서 말입니다(42).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향유도, 즐거움도, 행복도, 평화도 아닙니다. 그것은 최상의 사랑 그리고 해방된 영적 사랑의 활동 안에서 진리와 실재를 초월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만족이나 안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달음과 생명과 창조성과 자유입니다. 사실 관상은 사람의 가장 높고 본질적인 영적 활동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신의 아들됨을 가장 창의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확증하는 것입니다. …… 그것은 사람이 그의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 아들(the Son)이 그의 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그리스도가 깨어나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나' 안에 있는 진리(the Truth)와 신적 자유(the Divine Freedom)의 승리입니다. 그 가장 깊은 '나' 안에서 아버지가 아들과 하나가 되십니다.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 안에서 말입니다. (34)


    또한 흥미롭게도 머튼은 TV시청자와 관상가를 비교하며, 신비한 매력에 끌려 수동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은 서로 닮았지만, 사실은 무비판적으로 TV에 흡수되는 시청자의 모습은 욕망과의 치열한 싸움 뒤에 수동적인 연합(또는 infused contemplation)에 이르는 관상가의 삶의 정반대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참된 관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각과 감정과 의지를 물질적 또는 일시적 수준에 묶어 두는 모든 것들과 아주 활발하게 그리고 고집스럽게 투쟁해야 합니다. 관상의 삶보다 활동적이고 강력한 형성(formation)을 요구하는 삶은 없습니다. 관상의 삶보다 외부적 요소들에 대한 의존에서 가차 없이 벗어나기를 강하게 요구하는 삶은 없습니다(126-27). 머튼에 의하면 관상은 삶의 일부가 아닙니다. 관상은 삶을 하나로 묶고 통합하게 합니다. "관상의 삶은 단순히 인간적 기술과 훈련이 아니라 우리 가장 깊은 영혼에 계시는 성령의 삶입니다"(45). 


      사실 이 책은 머튼이 출판을 보류해 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타계하였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2003년에야 윌리엄 쉐넌의 편집으로 정식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토머스 머튼의 묵상의 능력》(윤종석 옮김, 두란노, 2006)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번역판은 제목과 용어뿐만 아니라 장(chapater) 순서도 원서와 다르게 편집됨으로써 적지 않은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번역판이 출간되기 전에 대학원 수업 중에 이 책의 일부를 번역한 것이 있어서 개인 블로그에 올려 두었습니다. 제가 번역을 막 시작하던 때에 한 것이라 서투른 부분이 많지만, 책을 구입하기 전에 만약 《내적 체험》의 맛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내적 체험》 제13장 죄의식 http://nephesh.tistory.com/336.



2.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 Cincinnati, OH: St. Anthony Messenger, 1981


     《내적 체험》에 대한 아주 훌륭한 안내는 윌리엄 쉐넌의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관상에 대한 머튼의 주요 저작 9권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각 작품들의 집필과 출판에 관한 배경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롭고 각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탁월한 머튼 학자 쉐넌은 책의 핵심 내용들을 아주 정확하고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니다. 이 책에 포함된 머튼의 저작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장 : What Is Contemplation?

제2장 : Seeds of Contemplation

제3장 :  The Ascent to Truth

제4장 : Thoughts in Solitude and "Notes for a Philosophy of Solitude"

제5장 : The Inner Experience

제6장 : New Seeds of Contemplation

제7장 : The Climate of Monastic Prayer

제8장 : Zen and the Birds of Appetite

제9장 : Is the World a Problem?


이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시기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관상에 대한 머튼의 사상이 발전해 가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는데 이전에 대학원 수업 때 동학들과 함께 나누어 번역했던 것들 중 제가 맡아서 번역한 일부분을 역시 제 개인 블로그에 올려 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부족하나마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http://nephesh.tistory.com/333. 이것으로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를 마치며, 그동안 재미 없는 글도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 실제로 머튼이 개정작업을 한 때는 1959년 여름이지만, 최종으로 수정한 것은 1968년 그가 아시아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본문으로]

오래 전 대학원 수업 과제로 아래의 책의 일부를 번역하였다. 이글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의 The Inner Experience에 관한 윌리엄 쉐넌의 해설과 요약의 일부분이다. 번역이 서투르지만 수도원 밖의 세상에서 어떻게 관상 생활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지금은 책의 일부만 번역하여 올리지만, 이 책 전부가 번역되어 정식 출간될 날이 오길 기대한다.

William H. Shannon, "Ch.5 The Inner Experience" in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Cincinnati, OH: St. Anthony Messenger, 1981), 143-47.


세상 속에서의 관상 생활

Contemplative Life in the World


      수도원에서 사는 수사는 관상적인 추구에 있어서, 관상에 맞게 조정된 제도적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 그는 또한 고독의 분위기 속에 있게 되는데, 그것은 얼마간 최소한은 세속 생활의 압박들과 혼란들로부터 그를 지켜준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면서] 내면 생활에 열심인 평신도는 영적 추구에 도움이 되는 조직도, 분위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가 초보적인 기도 생활을 즐기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끝없는 투쟁을 기꺼이 직면해야한다. 그것은 세상의 영(spirit)에 그를 넘겨주고, 하나님의 영에 대한 민감함을 무디게 만드는 집단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이 투쟁은 두 가지를 포함한다. 첫 번째는 세상과의 접촉과 세속적 관심에의 종속을 끊음으로써 그의 생활에서의 갈등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쁨과 위로, 명성과 성공을 향한 요구를 줄이는 것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과 초연함을 필요로 한다. 두 번째로 그 투쟁은 잔존하는 갈등들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갈등들은, 곧 소음과 동요, 시간의 부족, 그리고 세속 정신과의 지속적인 접촉이다. 그 세속 정신은 사방에서 우리를 집어 삼키는 듯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세속 정신으로부터 결코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평신도는 어떤 종류의 조직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형식적인 조직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비슷한 의지를 가진 다른 이들과 함께 하도록 할 것이다. 아마도 관상에 진정으로 관심있는 사제의 도움도 함께 있을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관상적 공동체와 접촉할 것이다. 머튼은 관상적인 시토회나 카르투지오회에 속한 제3회(Third Order)의 가능성을 마음에 그린다. 이와 같은 평신도 그룹은 그들의 구성원들에게 서적들과 회의들, 영적 지도를 공급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짧은 기간 동안 기도와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갈만한 시골의 조용한 장소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조직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영적 성장에 본질적인 조용한 분위기와 고독 또한 창출할 필요도 있다. 머튼은 이 목표를 향해서 세 가지 안을 제공한다. 나는 독자들이 그의 제안들이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지 여부를 곰곰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먼저, 내면 생활에 관심이 있는 평신도는 반드시 살 장소와 종사할 직업을 추구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그것은 그들에게 고독을 위한 기회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어떤 경제적 희생을 수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생각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은 시골이나 조그마한 마을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생기는 상대적 빈곤은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준의 생활 기준을 지키기 위한 냉혹한 투쟁으로부터 그들을 자유하게 해 줄 것이다. 직업에 관해서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산림관리원이나 등대지기, 또는 야간 경비원의 생활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머튼은 질문한다. “농사를 짓는 일에 잘못된 일이 뭐가 있는가?” 우리는 일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때에 머튼의 제안이 순진하고 비현실적이지는 않은지 반드시 물어 보아야만 한다. 분명히 그가 진술한 기본 원칙들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의 예들은 수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실제적이거나 심지어 가능한 것으로는 전혀 여겨지지 않는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 시점에서 그들에게 열려져 있는 어떤 장소와 직업이 관상적인 생활방식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숙고하기 원할 것이다.

     두 번째로 그들은 아마도 그 날의 조용한 시간들을 즐기기 위해서, 자신들의 매일의 활동계획을 다시 정리하기를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 시간들을 가치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이른 아침의 시간들은 당신이 고독의 평화를 맛볼 수 있도록 전 세상을 즐길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 준다. 새벽녘은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신비한 관상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시작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생활의 특징이 되어야만 하는 지속적인 내면의 영적 갱신을 상징화하는 데에 아주 적합하다.

     세 번째로 그들은 주일을 관상의 날로 지키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주일은 부활의 신비가 있는 날이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관상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주일은 그저 한 주의 쉬는 날만인 것은 아니다. 주일은 세속 시간의 다른 끊임없는 라운드로 들어가는 “신성한 영원으로부터 나오는 빛의 발산(a burst of light out of a sacred eternity)”(133)이다. 

     우리는 주일에는 일하는 것과 성급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월요일에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차리고, 한 주의 다른 육 일을 채우고 있는 세속적인 일에서 비교적 의미없는 부분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주일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의 만족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그 평화는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일을 그곳으로 향하게 맞춘다면, 남은 한 주를 여과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주일은 우리의 일이 적절하게 방향지워질 때 일주일 전체를 여과하는 평화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134).

     네 번째로 내면 생활을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평신도는 반드시 세상에서 수사가 되기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그의 기도 생활은 순수한 관상이 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머튼이 “가면 쓴 관상가(masked contemplative)”라고 부른 것이 되는 데에 만족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능동적인 선과 선한 일들은 반드시 필수적으로 그의 “관상가”로서의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든지, 아니면 어떤 직장의 사원이든지, 또는 그의 나라의 시민이든지 간에 그의 삶의 상황에서 의무들을 반드시 신실하게 감당해야만 한다. 기혼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그들의 결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그들의 관상을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그들의 배우자를 향한 사랑의 표현은 하나님과 그분과의 일치를 향한 열망의 상징이다. 그리스 교부들은 타락 이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문자적으로 한 몸이었으며, 하나의 단일한 존재였다고 믿었다. 타락이 그들을 이후로 영원히 둘로 나누었으며, 성적인 사랑은 그 잃어버린 연합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와 결혼하고, 그 자신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성적인 연합은 성육신 안에서 효력있는, 인류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의 상징이지만 덧없고 불완전하다. 기혼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비록 희미하고 불완전하게나마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완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상적인 영성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결혼의 신비에 뿌리박혀야 하고 거기에 중심을 둬야 한다.



관상 생활의 미래

The Future of the Contemplative Life


   The Inner Experience의 마지막 장에서 머튼은 오늘날의 세상에서의 관상 생활의 미래에 관하여 논의한다. 오늘날의 관상은 단순히 세상을 향한 의무를 회피하는 주관적인 평화로의 물러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관상가는 결국은 세상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관상가는 반드시 그의 물러남 안에서 그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독특한 공헌을 배워야 한다.

     관상가는 그저 자신을 다른 이들로부터 분리시켜서 다른 이들이 살기 위해 투쟁할 때에 묵상하기 위해 떠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관상가들은 자신들 위 “공중에 폭격기가 벌떼처럼 모여드는 때에도”(143), 기도 가운데 깊이 들어가기 위해 세상과 그의 투쟁을 잊을 수 없다. 관상가는 연합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진정한 관상가들은 반드시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의 보통 활동들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외적 생활에 빠져 있는 한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는 내적 중심을 깊은 생각과 고독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관상은 영구적으로 물러나 있는 생활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관상가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다른 사람들보다 덜 관심을 가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확히 그들이 관상가들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더욱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그들은 발생하는 일들에 그저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실제 이슈에 보다 더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진정한 마음의 순수함(true purity of heart)을 성취했다고 하면,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실재로 간주하는 외적 혼란에 덜 연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하고(real)” “실제적인(actual)”것을 보다 영적으로 파악할 것이며, 영구적이고, 인간적이며 참으로 영적인 가치들을 보다 깊이 감상할 것이다. 

     관상가가 세상에 이바지하는 공헌은 정치과학 또는 경제학 또는 어떤 다른 특정 분야에서 솜씨있는 전문가의 공헌과는 다를 것이다. 오히려 그 자신의 존재 안에서 전체성을 이루고, 통합된 사람, 그리고 전체성의 직관과 다른이들과의 연합을 전달하기를 추구하는 사람과 같은 형태의 공헌이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깊이 실제적인 것과 접촉하고 있으며, 그 자신의 시대의 이성(Logos)에 조화되어 있고, 사람들의 가장 깊은 고통들을 향한 동정과 그들의 가장 실현 가능한 희망들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연합, 곧 주님의 파루시아(the Parousia of the Lord)에서의 모든 것들의 최종적인 연합을 향하여 움직이는 인간성의 관상적인 관점을 통해서이다. 그는 반드시 수동적으로만 연합을 기대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그 자신의 창조적인 자유를 가지고 연합이 일어나도록 능동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기술들과 능력들로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프로메테우스식의 투쟁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겸손하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의 창조적인 사랑으로 자유롭게 협력하는 것이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참된 부르심,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에로의 부르심을 성취하도록 이끌 것이다”(145)는 것을 깨달을 정도록 충분히 현명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관상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인간의 자유로 향한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 사람들은 해방과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추구함으로써 더 깊은 노예 상태로 빠지는 비극 속에 있다. 관상가는 자유는 우리 안이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 박고 있음을 가르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자유에 동참할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로와지는 것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 위한 투쟁과 우리 자신의 욕구에 의해 지배받는 노예 상태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다. 자유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참되고 자유로운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우리의 거짓되고, 조작된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타락 이전의 낙원에서의 아담과 하와와 같이, 우리는 우리 하나님과 함께 자유로운 존재들로서 걸을 수가 있다. 저녁에 부는 시원한 산들바람 속에서 말이다.




Inner Experience : Notes on Contemplation

저자
Merton, Thomas/ Shannon, William H. (EDT)/ Shannon 지음
출판사
Harpercollins | 2004-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A final work by the late Trappist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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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의 팀블로그(spirituality.co.kr)에 쓴 글을 옮겨 놓는다.





토마스 머튼 윌리엄 쉐넌 (3)

머튼 백과사전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http://spirituality.co.kr/282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 2014년 8월15일


지난 달에 이어 이 달의 추천 도서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이 쓰거나 편집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서적들을 몇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1. 토마스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Maryknoll, NY: Orbis, 2002.)

      한 인물에 대하여 이런 백과사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그리고 연구의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수도자, 작가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토마스 머튼은 많은 저작물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매우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글들은 여러 매체에 중복해서 출판되기도 하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생각과 저술 주제는 개인적인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변하고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머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과 그의 글들의 탄생과 변화와 소멸을 제대로 '추적'하는 데에는 이 백과사전이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머튼을 연구하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머튼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아직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제한적인 연구자들과 독자들만 이 책을 접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 백과사전에는 (1) 머튼이 쓴 책들, (2) 그의 저술에 나타난 핵심적인 주제들, (3) 그의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 (4) 그가 살았던 장소들에 관한 알찬 정보들이 알파벳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윌리엄 쉐넌, 크리스틴 보센(Christine M. Bochen), 패트릭 오콘넬(Patrick F. O'Connell)은 모두 국제토마스머튼학회(ITMS)의 창립멤버이며 회장을 지낸 탁월한 머튼 학자들입니다. 이들 중 연장자인 쉐넌은 이미 작고하였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머튼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출판된 지가 이미 십여 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2000년 대에 출판된 자료들은 반영되지 않았고, 그의 책의 해외 번역본이나 머튼이 수도원에서 한 강의가 녹음된 오디오 자료들은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출판되고 있는 그의 강의 자료들이 어느 정도 완간이 될 때, 이 백과사전도 업데이트가 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2. 토마스 머튼의 편지 모음 (Collected Letters of Thomas Merton. 전5권.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s, 1985-1994.) 외

     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싶다면, 그가 쓴 일기와 편지 등의 개인적인 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머튼은 수도원에서 참으로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머튼 유작 관리위원회에서는 윌리엄 쉐넌를 총편집자로 선임하여 그의 편지들을 주고 받은 사람들과 주제 등을 기준으로 선택하여 다섯 권의 묶음집으로 출간하게 하였습니다. 이 중 쉐넌은 첫 번째 책인 The Hidden Ground of Love: Letters on Religious Experience and Social Concerns Witness to Freedom: Letters in Times of Crisis를 직접 편집하였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틴 보센과 함께 이 다섯 권의 모음집 중 핵심적인 글들을 간추려서 Thomas Merton, A Life in Letters: The Essential Collection (2008)으로 출간하였는데, 이 축약본은 다섯 권의 편지 모음집들을 다 읽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그는 머튼이 냉전 시대 때에 전쟁과 평화에 관한 주제로 쓴 편지들을 모은 Cold War Letters (2006)를 크리스틴 보쉔과 함께 편집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다음과 소개할 책과 함께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사상을 잘 보여 줍니다.


  


3. 평화를 향한 열정 (Passion for Peace)

     이 책은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에세이들의 모음집입니다. 윌리엄 쉐논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머튼의 에세이 23편과 머튼의 유명한 <평화를 위한 기도>를 묶어  Passion for Peace: The Social Essays 라는 제목으로 1995년에 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축약하여 Passion for Peace: Reflections on War and Nonviolence라는 제목으로 2006년에 다시 독자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아마도 쉐넌이 이 책을 이렇게 축약본으로 재출간한 것은 위의 편지글 모음집의 경우와 같이 두꺼운 책을 다 읽기 어려운 일반적인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런데 약 반 세기 전에 쓰여졌고, 이미 출간되었던 책이 십여 년 후에 축약본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일종의 '고전(classic)'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20세기 중엽에 쓰인 머튼의 글들이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와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서평은 필자가 영어로 쓴 졸고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http://nephesh.tistory.com/254)



4. 깨달음의 기도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마지막으로 윌리엄 쉐논은 머튼의 1차 자료(에세이, 편지 등)를 편집하거나, 머튼에 대한 2차 자료(안내서, 평전, 백과사전, 논문 등)를 쓴 것 외에도, 자신이 머튼의 글을 읽고 연구하며 얻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신앙이나 삶에 대해 직접 쓴 책들도 여러 권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권이 한국에 《깨달음의 기도》(은성, 2002)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New York: Crossroad, revised edition, 2000)입니다. 이 책은 관상에 이르는 침묵기도를 그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인 "깨달음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쉐넌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presence) 안에 있음을 '인식(aware)'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번역이 아주 흡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글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달에는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머튼의 관상에 대한 성숙한 사상이 담겨져 있는 The Inner Experience와 이 책에 대한 쉐넌의 해설이 담긴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4년 6월 18일. 수. 


얼마 후면 아내가 복직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결혼 후 11년 만에 벌써 세 번째 헤어짐. 여섯 해 전 아내를 한국에 두고 혼자 유학을 나와 살 때는 다시는 떨어져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부득이하게 아내를 먼저 보내게 되었다. 요즘 종종 아내가 없는 삶을 상상한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아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자면서도 곧 홀로 아침을 맞아야 할 때가 올 것을 생각한다.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아내 없이 혼자 이 길을 걸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와 이 땅에서 아주 헤어질 날이 올 것임을 상기한다. 고독하다. 아내 부재 연습은 곧 하나님 임재 연습이 될 것이다. 내 삶에서 아내가 차지하고 있는 그 큰 빈 자리를 하나님께서 채우고 계심을 발견하게 되기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시편68편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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