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spirituality.co.kr)에 쓴 글을 옮겨 놓는다.


2014년 4월 16일, 고난주간 수요일, 세월호가 조난당하고 삼백 여명의 꽃다운 생명이 바닷속에 잠겼다. 

1943년 4월 16일, 고난주간 금요일 밤, 토마스 머튼의 동생 존 폴 머튼이 영국 해협에서 조난 당하고, 다음날 이른 새벽 바다 위에서 숨을 거뒀다.


존 폴 머튼(John Paul Merton, 1918-1943)은 당시 캐나다 공군 소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탄 비행기가 고도를 잃고 바다에 추락했고, 그 충격으로 그는 척추가 부러져 버렸다. 함께 탑승하고 있던 동료 두 명이 그를 간신히 고무보트로 끌어 올렸지만, 그는 세 시간 정도 갈증 속에서 버티며 기도하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동료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바다 위를 표류하다가 표류 넷째 날 존의 시신을 수장하였고, 다섯째 날에 구조되었다. 양친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기에 토마스와 존 두 사람에게 서로는 참 특별하고 애틋한 존재였다. 토마스 머튼은 동생의 죽음 소식에 크게 슬퍼했고, 그의 세 시간의 목마름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목마름을 보았다. 아래는 토마스 머튼이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지은 애가(歌)인데, Thirty Poems(1944)라는 그의 첫 번째 시집에 실렸다가 후에 그의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 초판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세월호 사고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하며, 머튼의 시를 한글로 다시 옮긴다. 




동생을 위해 : 1943년 작전 중 실종됨

 


사랑스런 아우야, 내가 잠들지 않으면

나의 눈은 너의 무덤에 놓는 꽃이란다

그리고 내가 빵을 먹지 못하면

나의 금식은 버들처럼 네가 죽은 곳에 살리라

내가 뜨거운 열기 속에 갈증을 적실 물을 찾지 못하면

나의 갈증은 너, 가련한 여행자를 위한 샘이 되리라

 

네 가련한 몸은 어디,

어느 적막하고 연기 자욱한 나라에

누웠느냐, 실종되었느냐, 그리고 죽었느냐?

그리고 네 불행한 영혼은

어떤 처참한 풍경 속에 길을 잃었느냐?

 

오라, 나의 노동 속에 안식처를 찾으라

그리고 내 슬픔 속에 네 머리를 눕혀라,

아니 차라리 내 생명과 피를 가져라

그래서 널 위해 더 좋은 침대를 사라

아니 내 숨과 내 죽음을 가져라

그래서 널 위해 더 좋은 안식을 사라

 

모든 전사들이 총탄에 맞고

깃발들이 먼지 속으로 추락할 때

너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는 그들에게 여전히 말하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우리 모두를 위해.

 

네 사월의 잔해 속에 그리스도가 학살당하고

내 봄의 폐허 속에 그리스도가 눈물을 쏟는다.

그의 눈물의 돈이

너의 약하고 외로운 손으로 떨어지리라

그러면 너를 다시 사서 너의 땅으로 돌아오라.

그의 눈물의 침묵이 

종소리처럼 너의 낯선 무덤에 떨어지리라.

그 소리를 들으라그리고 오라그들이 너를 집으로 부른다.

 

 

/ 토마스 머튼 지음, 권혁일 옮김.

Thomas Merton(1915-1968), "For my Brother : Reported Missing in Action, 1943," in The Collected Poems of Thomas Merton (New York: New Directions, 1977), 35-36.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즐거운 독서(Joyful Reading)'라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2014년 5월 17일 모임을 위한 책소개와 토론 질문입니다.



 

 

네 가지 사랑의 힘으로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푸른숲, 2009.

 

 

 

   ‘한비야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바람의 딸’, ‘오지탐험가’, ‘국제구호단체 긴급구호팀장등의 타이틀이 그녀와 함께 따라 다니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호칭들보다도 독자들이 언니또는 누나라고 불러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렇게 언니 또는 누나로서 독자들에게 건네는 진솔한 이야기들입니다. 물론 작가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에게는 여동생이 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자기의 속내를 가감 없이 보여주며 나를 가깝게 느끼는 독자들에게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것만 주고 싶고 가슴 밑바닥에 나오는 가장 진솔한 얘기만 들려주고싶어서 라고 말합니다(7). 어떠세요? 여러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이 책은 들어가는 글(프롤로그)’나가는 글(에필로그)’ 사이의 모두 스물아홉 편의 독립된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에세이들이 4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각의 내용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나 주제를 몇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작가가 그 일을 해두었네요.

 

그렇게 다 털어놓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세상과 나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보였다. 세상을 향한, 여러분을 향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내 마음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건, 사랑이었다.

- 한비야, <들어가는 글>에서, 9.

 

, 자기 자신과 독자들과 세상을 향한 사랑이 작가의 삶의 원동력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다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모든 다른 사랑들의 근원입니다.


   먼저, (1) 자신에 대한 사랑난 내가 맘에 들어라는 제목이 붙은 1부에서, (2) 신에 대한 사랑2부의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글에서, (3) 세상에 대한 사랑2, 4부에 흩어져 있는 구호팀장으로서의 경험을 담아낸 글들에서 잘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4) 독자에 대한 사랑3부의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등과 같이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난 노하우 또는 조언들이 담긴 글에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의 사랑이 분리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모든 글들이 분리되지 않은 사랑을 기반으로 탄생된 것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 사랑으로 사는 삶

 

1. 나에 대한 사랑.

첫 번째 에세이에서 작가는 자신이 스스로를 좋아하는 사소한 이유들을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는 내가, 나는 제일로 마음에 든다.”(21) 라고 글을 끝맺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자아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아도취(narcissism)에 빠져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2. 독자에 대한 사랑.

사실 한비야에게 독자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그녀를 아주 좋아하는 부류와 그녀를 비판하는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통계를 내어 볼 수는 없으나,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부정적인 부류는 그녀의 여행기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한비야와 같은 독자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과 동료, 이웃들이 있지요. 우리가 그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사랑의 표현이 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말 한 마디라도 말입니다. 너무 이상적인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혹시 한비야처럼 나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할까요?

  

3. 세상에 대한 사랑.

요즘 세월호 사건 때문에 너무나 가슴 아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비야의 이야기들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세월호보다 심각한 일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최근 아프간에서 산사태도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몰된 사건과 나이지리아의 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삼백 명이 넘는 여학생들이 괴한에 납치된 사건들을 우리는 듣고 봅니다. 이러한 때에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어떠해야할까요?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되어져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이야기 : 책과 나

 

1. 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명

여러분은 신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한비야처럼 하나님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표현할 수가 있나요? 하나님은 한비야에게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141)고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작가는 그 음성에 순종하겠다고 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 주신 음성, 또는 사명이 있다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2. 그 외 여러분들께서 각 에세이를 읽으실 때 마음에 떠오른 느낌이나 질문들을 하나씩 나누어 주십시오. 이 책의 내용 중에 여러분이 가장 공감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혹시 작가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

(고린도후서 514)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서 18)


'산책길'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의 팀블로그(spirituality.co.kr)에 쓴 글을 옮겨 놓는다.



토마스 머튼윌리엄 쉐넌(1)

고요한 등불 (Silent Lamp)


사진1. The Merton Seasonal 표지에 실린 윌리엄 쉐넌의 초상화


     이 달의 추천 도서로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독서를 위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의 책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쉐넌은 머튼을 좀 더 잘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또는 머튼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안내자(guide)입니다. 그는 머튼의 타계 직후인 1970년대부터 그가 가르치던 나사렛 대학교(Nazareth College, Rochester, New York)에서 머튼 강의를 시작했고, 1887년에는 몇 명의 학자들과 함께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International Thomas Merton Society)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머튼의 사후에 출간된 많은 머튼의 글들(1차 자료들)이 그의 손을 거쳤으며, 머튼에 관한 중요한 해설서, 평전, 사전, 논문들(2차 자료들)의 목록에도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실로 그는 머튼 연구의 선구자이며, 탁월한 머튼 학자(Merton scholar)입니다. 그래서 2년 전인 2012년 4월 29일, 윌리엄 쉐넌이 94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의 계간지 The Merton Seasonal은 쉐넌을 특집 주제로 다루며 그를 기념하였습니다(사진1). 이에 현재 국내에 번역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토마스 머튼 독서에 도움이 되는 쉐넌의 책들을 몇 번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아직 학생으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까닭에 4월의 추천 도서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마무리 하는 데에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사진2. Silent Lamp 영문판

   먼저, 머튼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쉐넌이 쓴 머튼 평전 《고요한 등불: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은성, 2008)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번역본의 원전은 Silent Lamp: The Thomas Merton Story(NY: Crossroad, 1996)입니다. 나사렛 대학교에서 쉐넌 교수에게 직접 머튼을 배운 오방식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가 번역하였습니다. (제가 오방식 교수님을 통해서 머튼을 알게 되고 배웠으니, 쉐넌은 저에게 스승님의 스승님이 되는군요.) 


     한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생애를 아는 것은 매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토마스 머튼의 경우에는 유명한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1948)이 있지요. 물론 《칠층산》은 머튼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는 그의 생애 이야기이지만, 비교적 초기의 작품이라 이후 약 20여년 간의 그의 삶은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머튼은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칠층산》이 출판 된 지 몇 년 후, 그는 "칠층산의 머튼은 이미 죽었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해 갔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역동을 담아 내고 있는 것은 머튼의 전기들입니다.


     현재까지 머튼의 전기들은 영어로 여러 종류가 출간되어 있는데요, 그중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마이클 모트(Michael Mott)가 쓴 The Seven Storey Mountains of Thomas Merton[토마스 머튼의 칠층산](1984)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머튼의 일생에 대해 매우 자세한 내용까지 담고 있는 연구서이기 때문에 분량이 매우 두껍습니다. 그리고 머튼에 대한 다양한 모자이크 조각들을 담고 있어서 머튼 초보자들이 읽기에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아직 한국어 번역본도 없습니다. 쉐넌의 《고요한 등불》도 한국어 번역본이 564쪽에 이르기 때문에 결코 짧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이야기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독서하기에 버거운 정도는 아닙니다. 그의 생애와 관련된 세부적인 사건/사실들은 장(chapter) 중간 중간에 삽입된 연대기에 담겨져 있고, 본문에서는 각 장의 주제와 관련된 사건들만 선택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번역도 머튼을 전공한 학자가 했기 때문에 원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저를 비롯한 몇 명의 대학원생들이 수 차례에 걸쳐 교열, 윤문 작업에 동참했기에 문장도 매끄러운 편입니다. 물론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머튼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저자, 윌리엄 쉐넌이 쓴 평전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머튼에 대한 종합적이면서도 분명한 이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림으로 비유하면 추상화가 아니라 사실주의적인 인물화라고 할까요? 그렇다면 이 책에서 쉐넌이 그리고 있는 머튼은 어떤 인물일까요? 그것은 이 책의 제목 "고요한 등불(Silent Lamp)"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가 이러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경위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고요한 등불(Mei Teng)"이라는 말은 머튼이 《장자의 길(The Way of Chuang Tzu)》이라는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주었던 중국인 학자 존 우(C. H. Wu)가 1965년에 머튼에게 붙여 준 중국식 이름입니다. 쉐넌은 이 때가 머튼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때, 곧 완전히 은수자(hermit)로 살기 시작한 때이고, 이 이름이 머튼이 가톨릭을 넘어서 보편적인 영성을 향해 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해서 그것을 제목으로 채택하였다고 합니다. 나아가 쉐넌은 머튼을 많은 이들의 영적인 삶에 빛을 비추는 "등불"로, 그리고 시대와 공간과 전통과 문화를 넘어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보편적 인물(homo universalis)"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머튼의 관상적 영성(comtemplative spirituality)에서 찾습니다.(29-34쪽). 그러므로 아마 이 책에서 그리는 머튼을 단 한 단어로 요약을 한다면 '관상가(contemplative)'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관상가'라는 단어는 일종의 상징과 같아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머튼의 경우, '작가', '사회비평가'라는 정체성이 '관상가'에 포함되지요. 그리고 머튼은 수도원에 들어 가기 이전부터,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살 때부터 '관상가'였습니다.  

 

사진3. <고요한 등불>한글 번역판

   전기류의 글이면서도 특이하게도 이 책은 제1장을 토마스 머튼의 은사(gift)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쉐넌이 선정한 머튼의 주요한 은사 세 가지는 문재(文才, 글쓰기)와 신앙, 그리고 수도자로서의 소명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재능(talent)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머튼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gift)라는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이 더 적당할 듯합니다. 이후에 전개되는 장들에서 이 은사들이 각각의 또는 공통의 흐름을 이루면서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제2장부터 제6장까지는 수도자가 되기 이전까지의 머튼의 삶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주로 자서전 《칠층산》에 담겨진 내용들이지만, (아마도 수도원 장상들의 뜻으로) 집필/출판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완화된 뒷 이야기(behind story)들도 함께 담겨져 있어서 칠층산의 머튼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7장에서 제9장까지는 그가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간 1941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장이 첫 번째 장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은사를 하나씩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세상으로 돌아옴"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10장은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 갔던 머튼이 1958년 결정적인 방향 전환(또는 성장)을 경험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 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귀환' 이야기는 이른바 '성숙한 머튼(mature Merton)'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후 머튼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8년에 갑작스럽게 타계할 때까지 냉전과 평화, 인종 평등, 수도원 갱신, 종교 간의 대화 등의 사회적 이슈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이 내용은 제11장에서 제14장에 담겨 있습니다. 탁월한 머튼 학자 쉐넌은 이 마지막 장들에서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머튼의 사상을 그의 생애를 바탕으로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쉐넌이 이 책의 한국어판에 부치는 "감사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친애하는 독자님들, …… 우리를 분리하는 것은 단지 지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모두의 존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우리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사랑의 근원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6쪽). 저는 만약 머튼이 자신의 평전의 서문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글을 쓴다면 바로 이렇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튼은 "숨어 있는 사랑의 근원(the Hidden Ground of Love)"이신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인류가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토마스 머튼도, 윌리엄 쉐넌도 모두 이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가 그들이 남긴 글들을 읽고, 인류의 하나됨에 대한 그들의 사상에 동의한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역시 쉐넌이 쓰고, 오방식 교수가 옮긴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은성, 2005)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국내에 번역된 토마스 머튼의 또 다른 전기로는 《지혜로운 삶: 토마스 머튼의 생애(Living with Wisdom: A Life of Thomas Merton)》(분도, 1994)가 있습니다. 이 책도 머튼과 직접 편지를 주고 받던 평화운동가 짐 포리스트(Jamse H. Forest)가 쓴 훌륭한 전기이므로 머튼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합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한 쌍의 청년들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요즘은 마음이 너무 아픈 때이지만, 어려움을 넘어서서 사랑과 용기로 가정을 이루는 두 사람을 축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4. 4. 20.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아들 OOO 형제와, 주님께서 참 사랑하시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딸 OOO 자매의 혼인예식으로 오늘 이렇게 온 교회가 함께 모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두 젊은이가 이렇게 주 안에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요.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서로 합하여 한 몸이 되라”(마19:5)는 주님의 명령과 신비로운 이치를 따라 오늘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오니, 성령께서 두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물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진실한 사랑으로 뜻을 정하고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얕은 지도 저희가 잘 아오니, 이 두 사람이 사랑이신 주님을 닮아 내일은 오늘보다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해 주시고, 평생 사랑 가운데서 계속해서 자라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자기를 불쌍히 여기기보다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게 하시고, 자기의 뜻과 습관을 고집하기보다 배우자의 뜻과 습관을 존중하는 지혜와 마음이 있게 하소서. 중요한 선택이든지, 사소한 선택이든지, 모든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남편 또는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이 상반되지 않도록,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추구하며 살게 하소서. 그러할 때 주님께서 이 가정의 모든 영적 필요, 정서적 필요, 신체적 필요, 경제적 필요도 채워주셔서, 그것으로 또 이웃들과 풍성하게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두 사람의 하나됨이 닫혀진 담합이 아니라, 이들이 속한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공동체 가운데 더 큰 하나됨을 이루는 열린 연합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더욱 더 오늘은 주님께서 슬픔과 절망과 죽음을 이겨내시고 세상의 소망이 되신 부활절이기에, 두 사람의 결혼이 더욱 의미 깊은 듯합니다. 앞으로 이 가정에 어려움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과 믿음과 소망으로’ 그 파도를 넘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늘 함께 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고 증인이 되기 위해 모인 저희들 중에, 이미 가정을 이룬 선배들은 이 두 젊은이에게 더욱 좋은 가정의 본을 보이고, 아직 미혼인 이들은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가는 아름다운 본을 배우기를 바라오니, 하나님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오늘 이들의 결혼식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성심껏 준비하고 섬기는 손길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두 사람이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길도 안전하게 지켜 주시길 간구합니다. 서로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OOO 형제, OOO 자매를 인생의 어느 골목에서 만나게 하시어 부부로 함께 걷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그리고 장차 두 사람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찬양하며,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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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6. 수.


세월호 참사. 너무 안타깝고, 애끓고, 분통이 나서 공부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작년 이맘 때 아버지 일로 견딜 수 없이 애태우던 때로 돌아 가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사고가 나던 그 시각, 난 포항으로 돌아 가는 조영광 전도사님과 까페에 앉아 2007년 포항에서 의사한 한규를 이야기했다. UC버클리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처럼 내가 쓸려 내려가는 것 같다. 아직도 물속에 잠겨 있는 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계속해서 화살기도를 바친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주님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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