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1. 목


친구 분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서 Emeryville에 있는 Lush라는 가게에 들렀다. 평소에 사소한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가 그분이 이전에 생일 선물로 수제 비누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는 말을 들은 것을 기억해 내었다. 


난 그분이 직접 요청하신 것도 아닌데 굳이 집에서 먼 곳까지 가지말고 가까운 곳에서 적당한 선물을 사서 드리자고 했다. 내 기준에 남자에겐 비누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래도 선물을 받으실 분이 좋아하시는 것을 사드리자고 해서 시간을 들여 에머리빌까지 왔다. 


아내가 5리를 함께 가기를 원하는 자와 10리를 동행하라는 복음서의 말씀을 들이대는 바람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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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8. 월. Columbus Day



바람도 쐴 겸 그리고 돌아 오는 주일에 있을 청년부 소풍 사전 답사 겸 해서 Lake Chabot에 갔다. 조용한 호숫가를 산책하고 아내가 준비한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넉넉한 호수 위를 거닐던 바람이 우리의 마음도 여유롭게 해 주었다. 우리 가정이라는 자동차에 누군가를 태워 라이드를 제공하고, 끝까지 함께 가지 못하더라도 그가 내릴 곳에 도착하면 기쁨으로 보내주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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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13-18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요구한 백성들을 나무랐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어 그들의 죄가 큼을 밝히 보여주셨다. 사울도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왕이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들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사울은 침묵했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 진정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선포하며, 왕이 되기를 겸손히 거절하고 왕위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릴 엄두를 전혀 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왕이라는 명예와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였을까? 


만약 사울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고 해도 백성들이 다시 다른 왕을 요구했을지도 모르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이에 순종하라고 강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 순간에 침묵하지 않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했다면, 그리고 그의 나라를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두고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만 삼았다면, 그의 비극적인 결말이 상당히 바뀌지는 않았을까? 다윗의 등장 이후 왕위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였던 초라한 사울왕의 모습이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젊은 사울의 침묵 속에 이미 보이는 듯하다. 무엇이든지 그 시작이 참 중요하다. 나는 정말 말해야 할 때에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에 필요 없이 말하지는 않는가?


201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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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 9. 화


1. 다시 밭의 일부를 갈아엎고 고랑을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밭을 가는 작업은 참 고되다. 땅 속 깊이 박힌 잡초와 나무 뿌리들과 씨름을 하는 데에는 힘도 많이 들지만 시간도 적지 않게 소모된다. 밭을 갈러 나갈 때면 텃밭을 계속 가꾸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끊이 없이 떠오르고, 다른 해야할 일들이 생각이 나서 발걸음이 무겁다. 그러나 막상 곡괭이와 삽을 들고 일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질문들은 사라지고 그냥 땀을 흘리며 일에 몰두게 된다. 육체 노동을 하며 흘리는 땀은 때로는 마음 속의 노폐물도 빼주는 듯하다. 청소나 설겆이 등을 할 때도 느끼지만 '단순 노동'은 마음을 단순하게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단순 노동이 결코 쉬운 일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원에서도 육체 노동은 수도 생활의 일부가 되어 왔다. 아니 단순한 일부가 아니라 영성 훈련의 중요한 한 방법이다.


2. 단단한 흙에 구멍을 낸 뒤, 삽을 깊게 박아서 흙을 떠내었다. 뿌리가 얕은 잡초들은 흙과 함께 나오지만, 깊이 박힌 녀석들은 여러 번 삽질을 해야했다. 지렁이들도 놀라서 꿈틀거린다. 오늘은 바닥을 지나가는 나무 뿌리도 발견했는데,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이 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 뿌리가 농작물들이 먹어야 할 흙 속의 양분을 '폭풍 흡입'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반드시 파내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나무 뿌리와 씨름하다가 지쳐서 삽을 놓아 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무 뿌리에 너무 열중하느라 필요 이상으로 땅을 깊이 판 것 같다. 이럴 땐 쉬어가면서, 전체적인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3. 오늘 점심에 시편을 읽는데 밭가는 이야기가 나왔다.


   "밭을 가는 사람이 밭을 갈아엎듯 [원수]들이 나의 등을 갈아서, 거기에다가 고랑을 길게 냈으나, 

    의로우신 주님께서 악인의 사슬을 끊으시고, 나를 풀어 주셨다." (시편129:3-4, 새번역)


비록 나는 밭을 가는 입장이었지만, 당하는 자의 고통이 '몸으로' 이해가 되는 듯하다.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비유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느낌이겠지만, 농업사회에서 살아가던 당시 시편의 독자들은 이 구절을 아주 생생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느낌을 이전보다는 더 잘 알게 된다. 이렇게 배우는 것들이 있으니, 며칠 뒤 다시 삽을 들고 땅을 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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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 화


'과연 달팽이들이 맥주에 모여들었을까?' 

아침부터 우리 부부의 관심사는 텃밭에 가 있었다. 어젯밤 설치해 둔 '맥주와 담뱃재'의 콤비가 우리의 골칫거리인 달팽이들을 모두 다는 아니더라도 제법 해결해 주었기를 기대하며 텃밭으로 향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뿌연 맥주 속에 보이는 달팽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상추와 브로콜리들은 더욱 초췌해 보였다. 조심스레 상추밭을 들여다 보니 뭔가 이상해 보였다. 이럴수가! "이건 달팽이가 아니라 뭔가가 뜯어 먹은 자국 같은데." 순간 머릿속으로 며칠 전 아내가 했던 이야기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상추 밭에 짐승 발자국들이 있더라구……"

"수도 꼭지 옆에 너구리가……"


짧은 순간에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너구리다! 너구리였다! 좀더 자세 살펴보니 모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상추 잎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그동안 계속해서 너구리의 야참거리가 되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 상추밭은 너구리의 '야간 매점'이었다. 어쩐지 그동안 상추가 거의 크지 않는다 싶었다. 잎모양도 조금 이상했는데 어려서 원래 그런 줄 알았다. 너구리가 특히 상추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작물들보다 상추가 거의 아작나다시피했는데, 지금까지 매일 보면서도 그걸 몰랐다. 참 경험 없고 센스 없는 농부들이다. 다른 작물들도 돌아 보니 옥수수도 하나 도둑 맞았다. 이번에도 역시 너구리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아내와 나는 큰 허탈감 속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잡식성인 너구리가 범인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너구리를 막을 수 있는 도움되는 정보는 찾기 힘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작물들이 잘 자라준다고 해도 도둑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이다. 밤을 새서 밭을 지킬 수도 없고 …… 농사를 그만 두어야 하나?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일단 울타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울타리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재료도 마땅치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상추를 심어 놓은 이랑 주변만 울타리를 세워 보기로 했다. 뜨거운 해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늦은 오후 다시 밭으로 나갔다. 엉성하지만 기둥들을 세우고, 줄로 잇고, 밭 한쪽을 상당히 침범한 블랙베리 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바리케이트를 쳤다. 너구리가 울타리를 힘으로 밀고 들어오거나 잔잔한 가시들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았다. 그래도 안 되면 농사를 접기로 했다.


문득 아가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느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아가서 2:15)


이 비유에서 '작은 여우'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실감이 난다. 며칠 전 제법 어두워졌을 무렵 아내가 수도 꼭지 옆에서 봤다고 하던 너구리, 그 녀석이 우리를 이렇게 허탈하게 만들 줄을 몰랐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쳤다. 우리의 가정에, 교회에, 모임에, 그리고 넓게는 나라에, 이처럼 사소하게 여기고 방치하는 '작은 여우'가 또는 '작은 너구리'가 가정과 교회와 모임과 나라를 온통 헤집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다.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 주위를 맴돌며 밤을 기다리는 너구리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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