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토요일 오후
또 한 주가 젊음처럼 사라져
때 묻고 땀에 저린 그림자들
주섬주섬 모으고 깨끗이 빨아
옹기종기 창가에 널어 두자
촉촉해진 그림자가 말라가고
배부른 아기는 또 졸리우고
먼지바람 불어 창에 갇힌 날
그의 등이 점점 굽어지는 때
어느덧 환해진 서쪽 창으로
빛처럼 밀려드는 바다소리
2016. 4. 10.
뜻밖의 토요일 오후
또 한 주가 젊음처럼 사라져
때 묻고 땀에 저린 그림자들
주섬주섬 모으고 깨끗이 빨아
옹기종기 창가에 널어 두자
촉촉해진 그림자가 말라가고
배부른 아기는 또 졸리우고
먼지바람 불어 창에 갇힌 날
그의 등이 점점 굽어지는 때
어느덧 환해진 서쪽 창으로
빛처럼 밀려드는 바다소리
2016. 4. 10.
한웅재의 〈의의 나무〉라는 노래의 가사 중 다음과 같은 첫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저 산꼭대기 의로운 나무 섰네
그 심중에 심겨 자라오던 나무여
그 오랜 밑둥을 잘라 깎아오던 이 있어
그 분은 나사렛의 한 가난한 목수였네
권력자 하만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나무를 높이 세웠다가 오히려 자신이 그 나무에 매달려 죽었다(에스더 7:9-10). 그러나 가난한 목수 예수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못 박힐 나무를 깎았다. (그는 스스로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이 땅에서의 삶은 노랫말처럼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스스로 깎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요즘 국회의원 선거 공천 과정을 보니 오늘날에도 앞다투어 높은 나무를 세우는 하만들이 보인다.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오기 전, 성금요일인 오늘만이라도 그 나무를 내려 놓고 잠잠히 '의의 나무'에 달린 예수를 올려다 보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생각 없이 지금 이 순간도 서로 나무를 붙들고 싸우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치는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2016. 3. 25.
엄마가
다 안다고
근근이 하루를 버틴
회색빛 숲
시든 어깨 위
살며시
노을이 내려
다독다독
엄마가 다 안다고
다독다독
2016. 3. 16.
뜻밖의 토요일 오후 (0) | 2016.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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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맞대고 (0) | 2016.03.09 |
희망의 근거 (0) | 2016.02.14 |
얼굴을 맞대고
겨울과 봄이 어우러진 날
창가에 앉아 책을 펴니
책장 위 그늘진 내 얼굴에
그의 눈부신 얼굴이
여름처럼 내리쬔다
어떡하나
우울한 구름, 슬픈 안개 위로
감히, 고개를 드니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흐린 거울 너머
청명한 하늘에 스민
그대 투명한 얼굴
2016. 3. 9. 온천동.
희망의 근거
1.
겨울이 아무리 혹독하고 길어도
끝내는 봄이 오리라는 생각은
자연의 이치에 근거한
합리적인 상식이지만
날카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나무껍질 뚫고 얼굴 내미는
벚나무 어린 새순 보며
마른 나뭇가지인 내게도
따뜻한 봄바람 불고
푸른 싹이 돋아 나리라
기대하며 눈물 닦는 건
근거 없는 희망
감상적인 도피일까
공중의 새와 들의 꽃보다
사람을 더 귀히 여긴다는
신의 사랑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일까
희망이란
근거를 갖게 되면
이미 희망이 아니며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것을
희망하는 어린이의
어리석음
상식은 있으나 희망 없는
똑똑한 어른들에겐
천국도 없다는데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일까
2.
아직도 어두운 겨울
밤이면 몸이 가려워
한숨 속에 뒤척이는 건
찬바람에 언 피부 뚫고
새순 돋느라 그렇겠지
동주의 시처럼
봄이 녹아 혈관 타고 돌돌
흐르느라 그런 거겠지
근거는 없지만
2016.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