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속의 〈재의 수요일〉 그리고 〈흰 그림자〉:  

사순절에 읽는 T. S. Eliot와 윤동주



오는 2월 14일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이틀 앞둔 날이자, 기독교 전통 절기인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참회하는 약 40일 간의 기간이며, 그 첫 날인 수요일에는 재를 이마에 바르며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되새기는 의식을 행한다. 그래서 이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부른다. 


아마도 재의 수요일에 관하여 가장 유명한 시는 T. S.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의 장편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윤동주가 애독하던 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었다고 한다.


윤동주가 어떤 점에서 이 시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침 2월 14일은 재의 수요일이고, 이틀 뒤인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한지 73주기가 되는 날이므로 엘리어트의 시와 윤동주의 시를 함께 읽으며, 사순절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길을 하나 제시하고자 한다.



1. 황혼 속의 비상


T. S. 엘리어트는 20세기 영미권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첫 장편시인 〈재의 수요일〉은 일반적으로 시적 화자가 영적 절망과 고갈을 통과하여 개인적인 구원으로 향하는 내적 여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시는 T. S. 엘리어트가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옮겨간 지 약 3년 후인 1930년에 출판되었다. 그래서 이 시는 때로 그의 ‘회심시’로 불리기도 한다. 이 시는 모두 6부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마지막인 6부의 첫 두 연을 우리말로 옮겨 인용한다. 


 

재의 수요일

 

VI.


다시 돌아가리라 바라지는 않지만

바라지 않지만

돌아가리라 바라지 않지만 


이익과 손해 사이에서 망설이며

꿈들이 교차하는 이 짧은 전이 속에서

탄생과 죽음 사이의 꿈이 교차하는 황혼

(신부님 저를 축복하소서) 이것들을 바라기를 바라지 않지만

넓은 창으로부터 화강암 해변을 향해

하얀 돛들이 여전히 바다를 향해 날아오른다, 바다를 향한 비상

부러지지 않은 날개들


이 부분에서 시적 화자는 과거의 엇나간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이익과 손해 사이에서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짧은 황혼 속에서 꿈들이 교차하고,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화강암이 빛나는 해변을 향해 믿음으로 비상한다. 이 순간 그는 희망찬 날개짓을 하는데, 이 날개들은 1부에서는 날기를 바라지 않고 허공만 칠뿐이었지만 여기서는 회복되어, 시적 화자는 “부러지지 않은 날개들”로 비상한다. T. S. 엘리어트에게 황혼은 이렇게 전이와 비상의 시공간이었다.


황혼은 낮이 밤으로 바뀌는 때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일시적인 순간이며, 그래서 인생의 덧없음을 맛보고 동시에 영원을 소망하는 종말의 때다. 재의 수요일은 이런 의미에서 황혼의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마에 재로 된 십자가를 받으며, “너는 흙에서 왔으니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음성을 듣는 이 날이 바로 이 황혼의 때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 흙인 것과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부질없이 바라며 서성거리고 말 것이다. 육지를 떠나 바다 위 하늘로 비상하지 못할 것이다.



2. 황혼 속의 깨달음


윤동주 시인이 T. S. 엘리어트의 시를 애독할 무렵에 쓴, 〈흰 그림자〉라는 시에도 ‘황혼’이 등장한다. 그가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첫 학기에 쓴 이 시는 황혼 속에서 그가 경험한 신비한 깨달음이 기록되어 있다. 곧, 윤동주에게 있어서 황혼은 깨달음의 시간과 공간이다. 그의 육필원고에 기록된 원문을 현대 국어의 맞춤법으로 일부 수정하여 인용한다.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1942. 4. 14.


 

시인은 황혼 속에서 땅검(땅거미)이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를 듣는다. 황혼과 동의어인 ‘땅검’은 해질녘의 어스름한 빛을 의미하는 단어로 원래 시각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황혼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일 때 놀랍게도 그는 땅검의 발자취 소리를 듣는다. 곧, 황혼이 청각적으로 경험된다. 시카고 대학 교수 버나드 맥긴(Bernard McGuinn)에 의하면, 기독교 영성가들은 보통 자신들의 하나님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공감각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언어로 담아내기 불가능한 초월적인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적 언어, 특히 모순되는 감각들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공감각적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윤동주는 황혼 속에서 어떤 영적 체험을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시인은 자신이 땅거미의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총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신비한 경험의 전제 조건이 지적인 총명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어리석다고 말한다.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발견되는 깨달음, 또는 신비한 경험의 전제 조건은 지식이나 총명이 아니라,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는 것이다. “하루 종일 시든 귀”는 무엇일까? 아마도 시인은 그날 하루 많은 말들을 듣고 살았을 것이다. 비단 말뿐만이 아니라, 당시 일본 땅에서 살아가던 식민지 청년의 하루는 그의 영혼을 시들게 할 만큼 매우 피곤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시든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황혼을 향해 그의 지친 전 존재를 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 그에게 새로운 영적 경험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시인은 황혼 속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는 이 시에서 그 깨달음의 내용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결과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오래 마음 깊은 속에 /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 보낸다. 〈재의 수요일〉에서 T. S. 엘리어트는 꿈들이 교차하는 황혼 속에서, 과거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바다를 향해 비상하였다. 그러나 윤동주는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제 고장으로 돌려보낸다. 윤동주가 돌려보낸 것은 “괴로워하던 나”이므로, 비록 ‘돌려보내는 것’과 ‘돌아가지 않는 것’의 차이는 있지만 역시 T. S. 엘리어트와 마찬가지로 미래 지향적인 결정, 또는 그런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돌려보낸 ‘나’들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흰 그림자들”이다. 보통 윤동주가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은 시인이 사랑하던 조선인들, 곧 ‘백의민족’이라 불리는 우리 민족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할 때는 그가 사랑하던 민족을 왜 그 마음에서 돌려보냈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림자는 원래 검은 색이지만, 시인의 그림자는 흰 색이다. 흰색의 그림자란 태양 아래서 볼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으니 허상이다. 그러므로 결국 시인이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괴로워하던 나들은 참된 나와 통합을 이룰 수 없는 비현실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고장에 돌려보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흰 그림자들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 소리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밝은 태양 아래서는 흰 그림자는 보이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는 흰 그림자가 나타난다. 곧, 어둠은 자신의 허상인 흰 그림자를 발견하는 최적의 조건이다. 우리가 어둠을 부정적으로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는 우리의 영적 여정 중에 ‘어둔 밤’과 같은 시기가 있지만, 이 시기는 우리의 환상적인 자아를 발견하는 복된 시기다. 또한 시인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를 발자취 소리가 들리는 땅거미와 대조를 시킴으로써 그것들의 비현실성을 다시 부각시킨다. 우리는 이렇게 모양도 소리도 없는 비현실적인 나에 얼마나 많은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마지막 연이 매우 인상적이다. 시인은 모든 것을 돌려보낸 후 허전히 방으로 돌아와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양은 먹이 사슬에서 아래에 위치하는 매우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양이 하찮은 존재가 아닌 것은 다른 이들을 공격하지 않고 풀포기나 뜯는 평화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평화와 공존에 대한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또한, 풀포기를 뜯을 수 있는 양은 선한 목자를 가진 양, 그리고 그 목자를 신뢰하는 양이다(시편 23편 참조). 결국 이 시는 평화와 공존에 대한 신념, 그리고 목자에 대한 신뢰로 끝을 맺는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시인은 황혼 속의 깨달음 뒤에도 여전히 침략자의 나라에서 공부하는 식민지 청년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괴로워하는 나가 아니라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으로 살고자 한다. 내적 변혁이 일어났다.



3. 황혼에 귀를 기울이면

 

다시 재의 수요일, 그리고 사순절을 생각한다. 주일을 제외한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는 최대한 마흔 번의 황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낮과 밤, 빛과 어둠, 그리고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는 황혼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우리도 T. S. 엘리어트처럼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이익과 손해 사이에서 서성이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또는 청년 윤동주처럼 나 자신의 흰 그림자들, 내가 집착하는 환상적인 나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비록 우리가 총명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절망, 슬픔, 피로 등 이 모든 것들을 담아 시든 귀를 열어 황혼에 귀를 기울인다면, 또는 석양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우리도 T. S. 엘리어트처럼 부러지지 않은 날개로 바다를 향해 비상하거나, 윤동주처럼 흰 그림자들을 돌려보내고 시름없이 풀포기를 뜯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글은 원래 2016년 2월 10일,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팀블로그에 게재한 것인데, 조금 수정하여  「좋은교회」 2018년 2월호에 기고한 것이다.


저희 가정에서 사용한 자료를 약간 수정해서 올립니다. 필요하신 분은 파일로 내려받아 사용하셔도 됩니다.

설날 추도 예식 자료 3.pdf



설날 추도 예식

 

 

1. 예배로의 부름 야고보서 117/ 인도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기도 : 사랑의 아버지. 지난 한 해도 저희 가족에게 많은 선물들을 베풀어 지켜주시고, 새해를 맞이하여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 자리에 성령으로 함께 하여 주시고, 주님 안에서 여기 모여 있는 저희들은 물론, 멀리 있는 가족·친척들과, 주님 품에 있는 고인이 함께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모두 함께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3.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1, 4) / 모두 함께

 

1.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4. 세상 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 가게 하소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4. 대표기도 / 맡은 이


5. 성경봉독 사도행전 2031-35/ 맡은 이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6. 말씀 나눔 다음 사람을 위하여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끌림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시인이 이탈리아 베니스에 한 달 정도 여행을 하게 되어 집을 한 채 빌렸다고 합니다. 그는 도착한 첫 날, 어두운 방의 불을 켜고 집 안을 둘러보는데, 작은 탁자 위에 정성껏 포장된 무언가가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놓여져 있는 메모지에는 다음 사람을 위하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냥 놓아두고 잤는데, 다음 날 아침 집주인으로부터 그 선물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몇 년 전부터 여행객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짼가, 네 번짼가 그 집에 머물렀던 사람이 다음에 머물게 될 사람에게 선물과 함께 이런 쪽지를 남겨 놓고 떠났다고 합니다. “몇 달 동안 머문 이 집에서 나는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여기 굉장한 베니스에서 말입니다. 이곳에서 당신도 나처럼 멋진 경험을 하고 떠나기를.” 그 후로 사람들을 그 집에 머물렀다가 떠날 때, 포도주 한 병이나 비누 같은 작은 선물과 쪽지를 남겨 두고 떠난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시인은 집으로 돌아와 선물 포장을 풀어 보았습니다. 수채화로 곤돌라 그림이 그려진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이었습니다. 시인은 책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커다란 베니스의 지도를 선물받은 것처럼이나 감사했다. 이 감사가 내가 그곳을 떠나올 때에도 이어질 것이고, 그 다음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나는 그곳을 떠나오면서 다음 사람이 나처럼 굶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파스타 한 묶음을 올려놓고 왔다. 그리고 잊지 않고 메모지에다가 다음 사람을 위하여라고 적었다. 계속해서 감사는 박자를 맞춰 감사를 부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선물 받았고,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연의 선물인 곡식과 과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삽니다. 그리고 그 모든 선물들의 근원은, 오늘 예배로의 부름의 말씀인 야고서보서에서 말씀하시듯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 선물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밭과 들에서 자라는 곡식과 과일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칩니다. , 하나님은 농부와 유통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그리고 그 자연의 재료로 정성껏 요리를 하는 주부나 요리사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음식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2031-35절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남긴 고별 메시지의 일부입니다. 바울 일행은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은 기간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자신들의 손으로 수고하여 일함으로써 비용을 충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약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자신들의 생명을 에베소 사람들에게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에베소를 떠나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하라고, 그래서 수고하여 다른 이들을 도우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인으로부터 여러 가지 선물을 받았습니다. 육체의 생명이나 도움뿐만이 아니라, 고인께서는 우리의 성품과 마음에 참으로 많은 선물을 남겨두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다음 사람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만약 고인께서 책 속에 나오는 여행객들처럼 오늘 우리에게 쪽지를 남기신다면 무엇이라 적으실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이런 쪽지를 남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평생 머문 이 세상에서 나는 많은 꿈을 꾸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당신들이 있어서 힘이 되었고, 당신들에게 선물을 남겨주는 기쁨에 그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당신들도 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을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합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들도 나처럼 멋진 경험을 하고 떠나기를.”

 

7. 나눔과 기도 / 모두 함께

올 한 해 우리가 품고 있는 새해의 소망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8. 찬송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1, 3) / 모두 함께

 

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3. 존귀하신 주의 이름 우리 기쁨 되도다

       주의 품에 안길 때에 기뻐 찬송부르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9. 주기도 / 모두 함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설교문 > 가정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석 가정 예배 5  (0) 2017.10.03
추석 추도 예식 자료 3  (0) 2015.09.26
추도 예식 자료 4  (0) 2015.09.24


과거에 이웃으로 지내던 분들이 집으로 찾아와 현재가 되었다. 그러나 사진으로 찍는 즉시 그 순간은 다시 과거가 된다. 하지만 반 나절을 함께 보내며 경험한 반가움과 기쁨은 사진을 보고 있는 동안 다시 현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순간을 부지런히 사진으로 남기는 아내들과는 달리 남편들은 왜 추억을 남기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을까?


2016. 1. 4.


'날적이 > 그림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 냄새, 사람 냄새  (0) 2016.06.05
아이들의 방  (0) 2015.11.21
열한 번째 협곡을 지나며  (0) 2015.10.29

변두리 교회



봄같이 따스한 성탄 아침 

해보다 밝은 그리움의 별을 

끈질기게 따라 가다 보면

바람 속에 나타나는 

고요한 변두리

나지막한 다윗의 동네


골목 어귀 오래된 상가

언제나 그늘진 입구 앞에는

아직도 산타를 믿는 토끼가

산타가 두고간 선물이 있을까

동그란 눈으로 두리번두리번


폴짝폴짝 뛰어가는 토끼를 따라 

좁고 외로운 계단을 지나

습하고 어둔 지하로 내려가면

어수선해도 인정 많은 

조그마한 마굿간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천사처럼 모여 앉아

반주기의 힘찬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부르는 노래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제 코가 석 자인 사람들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더니

팥죽 한 그릇 나눠 먹고

헤헤 웃으며 헤어지는

변두리 교회 

빛나는 성탄 아침 


예수가 하나 둘 

태어났네


2015. 12. 25.



'시와 수필 > 멸치 똥-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의 근거  (0) 2016.02.14
멸치 똥  (0) 2015.12.22
나는 벌레입니다  (0) 2015.11.16

멸치 똥



시인이 되고픈 헛된 욕망은

과감하게 우체통에 버렸지만

시는 여전히 끊지 못해서

오늘도 커피를 입안에 머금고

향기처럼 퍼지는 시구를 음미한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처럼

가장 팔팔한 청춘을

어둔 방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가방끈을 늘리는 데 다 써버리고

벌써 중년에 접어들고 나니

숭고한 소명과 열정은

냉장고 안에서 잊혀진 

차가운 냄비가 되고 말았다


밥벌이도 하지 못하는

한량이 하는 일이란

기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입에 넣다 뱉어 버릴 

쓸모 없는 멸치 똥만

톡톡 따다 모으는 것이구나


아, 사랑은 어떻게 나를

다시 뜨겁게 하여

달리는 증기기관차처럼

오늘도 재봉틀을 돌리게 할까

바느질로 이것저것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는 

정 많은 장모님처럼

슬픈 사람 눈물 닦아주는

손수건 한 장 만들게 할까 


2015. 12. 22.

'시와 수필 > 멸치 똥-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두리 교회  (0) 2015.12.25
나는 벌레입니다  (0) 2015.11.16
나무인형  (0) 2015.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