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툭
툭
요 며칠 하나둘
떨어지더니
어젯밤에는 후두둑
소낙비처럼 졌다
꽃이 지는 걸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꽃이란 원래
피어났다가 지는 것
저 하늘에 올라 다시
피어나기 위해 떨어지는 것
인생도 그렇게 툭
떨어지는 것
하지만, 그리 생각해도
아쉬움은 가시지 않고
그리움은 밤마다
안개처럼 피어난다
오늘도 내일도
꽃이 떨어지고
2025. 6. 18.
툭
툭
요 며칠 하나둘
떨어지더니
어젯밤에는 후두둑
소낙비처럼 졌다
꽃이 지는 걸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꽃이란 원래
피어났다가 지는 것
저 하늘에 올라 다시
피어나기 위해 떨어지는 것
인생도 그렇게 툭
떨어지는 것
하지만, 그리 생각해도
아쉬움은 가시지 않고
그리움은 밤마다
안개처럼 피어난다
오늘도 내일도
꽃이 떨어지고
2025. 6. 18.
2025 한국기독교대학교목회 하계연수회 및 한국대학선교학회 정기학술대회 | 더숨포레스트호텔, 용인, 2025년 6월 19일.
오늘날 인류는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라는 획기적인 과학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물론, 여러 가지 우려스러운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학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주형 박사는 인공 지능이 대학 교육, 특히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며, ‘관상적 교수법’(Contemplative Pedagogy)을 통해 그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먼저, 발표자는 (1) 인공 지능이 인간 지성과의 협력을 넘어, 인간의 판단과 창의성을 대체하거나 통제할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2)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이 위협받고, 인간 지성의 주체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세간의 우려들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기독교 대학의 대응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대학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보는 신학적 인간관에 기초하여, 인간 존재의 고유성과 존엄성에 대한 강조점을 가지고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인간의 사고와 노동을 대체하는 인공 지능 앞에서 그러한 관점과 강조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 대학은 단순히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 자유 의지, 자율성 등 기독교적 인간 이해에 기초한 전인적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의 방향성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발표자는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프리드리히 슈바이처(Friedrich Schweitze), 양금희 등의 견해를 바탕으로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의 본질적인 과제는 학생 스스로 새로운 지식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곧 내면의 형성 및 문제 해결 능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성찰하고, 타자 및 세계와 관계 맺는 역량을 기름으로써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지적 성숙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천명한다. 이를 위해 그는 관상적 교수법을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에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관상적 교수법은 ‘관상적 연구’, 또는 ‘명상학’, ‘관조학’ 등으로 번역되는 ‘Contemplative Studies’라는 서구의 새로운 학문 분야에 바탕을 둔 교수법이다.1 간략하게 소개하면, “명상학은 명상과 관련된 수행 및 체험에 관한 연구와 교육에 초점을 맞춘 학제 간 연구 분야이다.”2 서구, 특히 북미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불교와 도교 등과 같은 동양 종교의 수행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학문적으로는 1970년대 이후 명상 수행이 인간의 신체와 심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의 실증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이를 기반으로 2010년에는 미국 종교 학회(America Academy of Religion, AAR)에 명상학 분과가 형성되었으며, 2014년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를 시작으로 여러 학교에 명상학 전공, 또는 학과가 생겨났다.
이처럼 명상학은 불교나 도교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자들로부터 시작하였으며, 그리스도교 중심의 서구의 종교학 연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발표자가 잘 소개하고 있듯이 명상학 연구자들은 서구 근대 인식론에 바탕을 둔 객관주의적, 과학주의적 관점과 3인칭 학습법 자체가 인지적 제국주의(cognitive imperialism)에서 비롯된 것이며, 학습자의 내재적 관점과 체험을 배제하려고 함으로써 – 실제로는 완전한 배제는 불가능하다 - 온전한 앎에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에서 대안적 교육 방법으로 관상적 교수법이 제시되었다. 관상적 교수법은 1인칭 학습법에 열려있다. 곧, 참여자, 내부자의 주관적 관점과 체험을 연구/학습에 포함시키되, 그것을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통하여 다각도로 검증하고 비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명상, 마음 챙김, 요가 등 전통적으로 종교적 수행으로 여겨졌던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인간 내면의 자각과 전인적 통합을 촉진”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명상학은 불교와 도교의 명상 수행과 철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관상적 교육법 또한 그러한 종교적 전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에 곧바로 도입하여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주형 박사는 캐슬린 피셔(Kathleen Fisher)와 제이콥 셔먼(Jacob Holsinger Sherman)의 관상적 교수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언급하고, 더불어 그리스교 전통에서의 관상(contemplation)의 개념과 영성 훈련을 소개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진리와 실천에 기반한 관상적 교수법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관상적 교수법이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에 주는 통찰과 유익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관상적 교수법은 대학 교육이 오랫동안 의존해 온 객관주의 중심의 학습 모델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적 교육 방식을 제시한다. … 둘째, 관상적 교수법은 AI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적 토대를 마련한다. … 셋째, 관상적 교수법은 대학 교양교육의 핵심 목표인 자아 성찰과 통합적 인격 형성을 실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교양교육이 지향하는 학문 간 통섭과 인격 교육이라는 복합적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 넷째, 관상적 교수법은 기독교 전통에 근거하여 영성과 진리를 현대적 언어로 구성하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춘 통합적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철학적 근거이자 구체적 교육 방법론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이주형 박사의 논문은 국내에 여전히 생소한 관상적 연구/명상학을 기독교 대학 교육 분야에 소개하고, 관상적 교수법을 통한 인공 지능 시대 교양 교육 혁신 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연구이다. 비록 “예비적 고찰”이라는 제목처럼, 구제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 논문을 시작으로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에서 학습자의 영적 실천과 내적 성찰이 동반되는 1인칭 학습법의 적용 가능성과 구체적 방법에 대한 후속적인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기대로 토론을 위한 질문을 두 가지 덧붙인다.
먼저, 미국에서 명상학과가 종합 대학교에서 하나의 학과로 설치되고, 관상적 교수법이 교육학에서 주요 주제 중 하나로 여겨지는 배경에는, 동양 명상이 정신 건강이나 자기 계발을 위한 비종교적인 활동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현상이 놓여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템플스테이나, 마음 챙김, 기(氣) 수련 같은 동양 종교에 뿌리를 둔 수행에 참여하면서도 자신을 불교나 관련 종교의 신자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참여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것은 그러한 수행에 참여하기 위해서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이나 신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영성 전통에서 내려오는 각종 영성 훈련들은 그렇지 않다. 발표자가 언급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예수 기도(Jesus Prayer), 향심기도(Centering Prayer)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 전제이다. 20세기의 영성가 토머스 머튼은 관상의 시작은 믿음이라고 말하였다.3 그런데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중에는 그러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이 대부분 학교의 현실일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교적 영성 훈련 방법을 사용한 관상적 교수법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학생들에게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한 발표자의 혜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음으로, 발표자는 인공 지능 시대 기독교 대학이 교양 교육을 통해서 양성해야 할 인재상으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며, 타자와 세계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인간 존엄을 실현할 수 있는 윤리적 역량을 가진 지성인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 교육의 현실은 좁은 취업 환경으로 인해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이들을 ‘주문 생산’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학이 변화하는 기업 환경과 인재상을 숙지하고, 학생들이 졸업 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충격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 더 인공 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여 수많은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에서 취업은 더욱 절박한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은 다소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최대 이윤의 추구라는 기업의 본질적 속성상, 기업의 이윤을 최대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기업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심한 경우에는 이윤을 위해 사람이 도구화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 대학의 교양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재상과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의 충돌, 또는 부조화를 어떻게 극복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구체적으로 관상적 교수법이 이러한 일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발표자의 고견을 밝혀 주시길 부탁드리며, 어설픈 논평을 갈무리한다.
[소논문] The Passion of Perpetua and Felicitas and Spiritual Practice: Reading the Ancient Martyrdom Narrative for Today’s Korean Christians (0) | 2023.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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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남기정의 “미디어 시대의 영성 생활”에 대한 논찬 (0) | 2020.05.26 |
숨은 신의 시대와 순교적 삶 (0) | 2018.06.27 |
아래의 글은 「신학과 실천」 제94호(2025년 5월)에 게재된 논문의 한글 초록이다. 이 논문은 지난 2025년 2월 제95회 한국실천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다. 요즘은 학술지 검색 사이트에서 쉽게 원문을 볼 수 있지만, 기록을 위해 여기에도 원고를 pdf파일로 첨부한다.
이 글은 “정의와 평화가 위기에 처하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때에 목회자들은 설교단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때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 답을 찾기 위 해서 이 연구는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수도자이자 사회 비평가였던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이 1961년 10월부터 1962년 10월 사이에 작성하여 긴급하게 등사판으로 배포한 『냉전 편지』(Cold War Letters)에 주목한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첨예한 대립으로 세계가 핵전쟁의 위기에 직면한 때에, 머튼은 ‘냉전 편지들’을 통해서 편지의 수신자들과 서간집의 독자들에게 정치, 사회적 문제의 도덕적, 영적 원인을 직시하고, 그리스도교 휴머니즘에 바탕한 제3의 길을 추구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냉전 편지』에 담긴 토머스 머튼의 사상과 호소는 진영이나 세력 간의 대립이 아닌 통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원론적 사고로는 도저히 생각해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제3의 위치’(a third position)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제3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메시지는 단지 정의와 평화의 구현을 위한 이상적인 원칙과 방향만 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지향하였다. 이와 같은 토머스 머튼의 메시지를 적용하면, 설교자는 당면한 역사적 위기에 대한 참된 영적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활동주의’(activism)에서 벗어나, 고독과 침묵 가운데 거하며 명료한 통찰력을 가지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회중들로 하여금 사회적인 현실은 도외시하고 개인적 위안으로만 만족하게 하는 ‘행복을 주는 약’으로 회중을 현혹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나아가 그리스도교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정치적 좌우를 넘어서는 도덕 원칙을 찾아, 통합의 길, 그리스도의 길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할 긴급한 사명이 있다. 토머스 머튼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처한 상황이 동일하지는 않다. 하지만, 수도원에서의 깊은 침묵의 삶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시대를 꿰뚫어 보았던 머튼의 메시지를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한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영적 갱신을 이루고,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데에 시의적절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We are already one (0) | 2020.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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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그가 살아나셨다 (0) | 2020.04.23 |
[시/번역] Macarius and the Pony (0) | 2019.07.11 |
5월 12일
12년 전
아버지께서
사망선고를 받은 날
12년 후 그날
5월 12일
아버지의 차는
운행 중지 진단을 받았다
주행거리 12만 킬로미터
2009년식 SM5 LE
장애인용 LPG
더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사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일주일 전 오일들도 모두 바꾸고
브레이크패드도 새 것으로 달아주었는데
그래서 수술을 받으시러 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새 남방도 두 벌 사서 걸어두셨는데
언제나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아버지가 아껴 타시다 물려 주신 차
영정 속의 아버지가 타시고
마지막 여행을 했던 차
즐거운 길도, 힘든 길도
나와 함께 달렸던 고마운 차
지난 어린이날도 가족들의
웃음을 가득 싣고 달렸던 차
일주일 동안 지하주차장에
안치해 두고서
깊은 밤 남 몰래 흘렸다
굵은 눈물을
중환자실 마지막 밤
아버지처럼
어떻게 하겠는가
여행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지
나눠줄 것 나눠주고
가볍게 떠나야지
폐차장에 차를 남겨 두고
뒤돌아서는데
화로 속에 관이 들어가던
그날이
자꾸 생각난다
2025년 5월 20일
한 소년이
벚꽃나무 아래
한 소녀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다
소녀는 수줍은 듯 서있고
소년은 바람에 흩날리는
소녀의 머리칼을 정리해준다
찰칵,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바람에 나무끼던 꽃잎도
잠시 숨을 참고 멈춘다
이번에는 소녀가
소년을 자기 뒤에 세우고
함께 셀카를 찍는다
소녀는 살짝 몸을 뒤로 기울여
소년에게 기대고
소년은 슬며시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소녀의 얼굴 옆에
자신의 얼굴을 맞댄다
꽃잎들도 불그스레해진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들도 모르게
벚꽂나무 아래 서면
누구나 소녀와 소년이 된다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소년과 소녀는
손을 맞잡고
꽃길을 걸는다
사월의 빛 속으로 행진한다
2024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