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8. 화.



이번에도 이삼일 하다가 말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몇 주째 저녁마다 줄넘기를 들고 나가서 운동을 한다. 이 여인을 십오년 동안이나 봐왔는데 아직도 한번씩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아직 그녀를 다 모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그녀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 생활은 다 알 수 없는, 그래서 소유할 수 없는 서로에 대한 끝없는 탐구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신비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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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5. 목


정호승의 《여행》이라는 시집을 잃고 있는데, 시인이 부친을 여의고 난 뒤에 적은 시편들이 내게 적잖이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라는 시를 읽는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님 면도도 해드리고, 손톱도 깎아 드리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던 시인이 참 부러웠다. 중환자실에 계시던 아버지께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 그래도 마음에 와닿았던 시 한 구절을 적어 놓자.


이슬이 햇살과 한몸이 된 것을

사람들은 이슬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

그러나 이슬은 울지 않는다

햇살과 한몸을 이루는 기쁨만 있을 뿐

이슬에게는 슬픔이 없다


- 정호승 <이슬의 꿈> 부분



2013. 9. 14. 토.


추석이 다가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 오늘은 한국에 있는 동생 가족이 추석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의 유해를 모셔 놓은 추모관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아직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어린 조카는 종이에다 팥빙수 한 그릇을 그려서 유리장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옆쪽에서는 한참 동안 추모예배를 드리는 가족이 있었고, 그 소리를 들으며 동생네는 "아버님,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돌아왔다고……. 나도 잠자리에 누워 그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2013. 9. 16. 월.


오늘은 어머니랑 평소보다 더 오래 전화통화를 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가 마침 어머니께서 암의 전조를 설명하는 TV 프로그램을 보신 직후였다. 아버지에게도 그런 전조 중의 하나가 나타나서 지역의 중형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그냥 감기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짧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병을 키운 것을 속상해 하셨다. 그래도……, 그래도……, 30여 분 동안의 통화 끝에 어머니께서 맺은 말은, 그래도 이제는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감사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어머니는 아픔과 그리움을 견뎌내고 계시다.



2013. 9. 18. 수.


여기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0시, 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 부산과 서울, 그리고 이곳 버클리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두 컴퓨터 앞에 모였다. 그리고 화상통신을 통해서 함께 추석가정예배를 드렸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인데 나도 해외에 있고, 서울에 사는 누나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부산에 내려가지 못한다는 소식에, 어머니와 동생 가족만 드릴 추도예배가 너무 허전할 것 같아 마음을 많이 쓰고 있었다. 아내는 내게 너무 마음이 안 좋으면 며칠이라도 한국에 다녀오라며 권했지만,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동생이 농담처럼 화상통신을 이용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것이 이렇게 실현되었다. 다같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같은 시간에 함께 연결되어 추도예배를 드리니 참 반갑고, 기뻤다. 아마 다음 명절에도 나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컴퓨터를 통해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겠지. 가족들과 만나 손도 잡고, 함께 밤새워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그런 명절이 얼른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추도 예배를 마무리하며, 아마도 작년 가을에 아버지께서 메모지에다 적어 놓으신 추석 인사말을 함께 읽었다. 

 

가을 하늘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가족과 이웃 간의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는

  추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우리 가족의 마음의 상처들도 잘 아물어 가기를…….



2013. 9. 21. 토.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갑자기 연기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외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니, 이산가족의 아픔을 백만분의 일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명절에도 화상으로도 만날 수 없고, 서로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그분들의 절망과 상처는 얼마나 클까? 이산가족 상봉을 두고 정치, 경제적 이해 관계, 자존심 등을 따져서는 절대 안 된다.

이번 추석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처음 맞는 명절이다. 그래서 제사를 대신해서 드릴 가정예배 자료를 준비했는데, 혹시 필요한 분들이 있을까 하여 자료를 아래아 한글 파일과 pdf 파일로 올려 놓는다.

추석 가정 예배 자료(예시).hwp     추석 가정 예배 자료(예시).pdf




추석 추도 예식

  


1. 예배로의 부름 마태복음 1128-29/ 인도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 한가위를 맞이하여 오늘 이렇게 저희 가족이 모여, 하나님 품에 있는 고인을 추모하며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이 예배 가운데 함께 해주시며,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과 멀리 있는 식구들도 한 마음으로 묶어 주시옵소서. 이번 한 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한 저희 식구들이 오늘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쉼과 평안을 경험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모두 함께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3. 찬송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1, 2) / 모두 함께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4. 대표기도 / 맡은 이

 

5. 성경봉독 이사야 254-9절(새번역) / 맡은 이

 

4. 참으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 흉악한 자들의 기세는 성벽을 뒤흔드는 폭풍과 같고,

5. 사막의 열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방 사람의 함성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구름 그늘이 뙤약볕의 열기를 식히듯이, 포악한 자들의 노랫소리를 그치게 하셨습니다.

6.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7. 또 주님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8.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9.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6. 말씀 나눔 그 날이 오면

 

   우리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글 중에 심훈의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매우 고통스러웠던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 민족이 품었던 광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표현한 시이지요. 이와 비슷하게 성경에도 그 날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져 있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본문 이사야 25장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때였습니다. 이방인들이 쳐들어와 포악을 행하고 나라를 짓밟았지만, 그들의 힘으로도 적들을 막아낼 수 없었고, 그들을 도와줄 힘과 인정을 가진 이웃 나라도 없었습니다. 절망과 고통만이 가득했지요. 이러한 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전합니다.

   이 때 그 날은 직접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광복절처럼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해방을 얻던 과거의 어떤 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날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종말의 날, 미래의 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하나님의 산 시온, 곧 하나님 나라로 불러 모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기시고, 죽음을 영원히 멸하시고, 눈물을 말끔히 닦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날은 잔칫날입니다. 더 이상 죽음과 슬픔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즐겁고 풍성한 잔칫날입니다.

   추석 명절도 원래 가족들이 모여 추수의 기쁨을 나누는 풍성한 잔칫날입니다. 그런데 고인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기에 우리 마음이 더욱 허전하고,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하나님의 산에서 있을 잔치에는 우리 모두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고인께서 먼저 하늘로 가셨고, 지금 살아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풍성한 잔칫날에 우리 모두 뜨거운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만남은 더 이상 죽음도 눈물도 없는 환희와 생명의 만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그 잔치를 고대하며, 이번 추석의 작은 잔치를 기쁨으로 함께 나눕시다.


7. 나눔과 기도 / 모두 함께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고인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아름다운 추억으로 인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혹시 함께 기도할 제목이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8. 찬송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3) / 모두 함께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9. 주기도 / 모두 함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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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불쌍한 나의 백성에게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하였다.

주님께서 징벌하시는 날에, 먼 곳으로부터 재앙을 끌어들이시는 날에, 너희는 어찌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청할 것이며, 너희의 재산을 어디에 감추어 두려느냐?

너희는 포로들 밑에 깔려 밟혀 죽거나, 시체 더미 밑에 깔려 질식할 것이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

(이사야 10장 1-4절, 새번역)


예나 오늘날이나, 힘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불의와 악행을 '합법적'으로 만들었다. 정치인들이나 사람들이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법대로' 한다는 것이 곧 '의롭다'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불의한 법대로 하는 일과 행동들은 곧 불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정의로운 법, 올바른 법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바른 법을 세우려면, 먼저 법을 만드는 자들이 발라야 한다. 마음이 비뚤한 자가 바른 법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법을 모니터 하는 언론과 시민의 역할이 높아져야 한다. 잘못된 법에 대해서는 언제나 아니라고 말하고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비뚤어진 마음으로 자신이 이득에 따라 교묘하게 법을 만들거나 고치고 있는데, 권력과 유착한 언론은 이를 쉬쉬하거나 미화시키고, 거의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여기에 오늘날 사회에서 불의가 '합법적으로' 용납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보가 아니시다. 그는 심판을 하시려고 손을 들고 계시다. 가능한 빨리 회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201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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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통곡하련다. 야스엘과 함께 통곡하고,

십마 포도원을 위해 통곡하련다.

그렇다. 헤스본과 엘르알레여,

너의 눈물에 내 눈물을 섞으련다! (이사야 16:9 / 메시지 예언서)

                                                            

모압을 생각하니, 

나의 심장이 수금줄이 튀듯 떨리고,

길하레셋을 생각하니,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이사야 16:11 / 새번역)


이사야 선지자는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모압과 함께 통곡했다. 그들의 눈물에 자신의 눈물을 섞었다. 이스라엘 백성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던 이웃 민족의 불행에 은근히 기뻐하기보다, 마치 자신이 모압인인 것처럼 뛰는 심장으로 안고 마음 깊이 고통했다. 어떻게 하면 이사야의 통곡을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웃의 아픔을, 북녘 동포의 절망을, 이웃 민족의 고통을 내 것과 같이 여기고 나의 눈물을 그들의 눈물에 섞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들을 자주 생각 속에 담으면 그렇게 될까? 참 선지자, 참 목회자는 이렇게 다른 이의 눈물에 자신의 눈물을 섞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2013.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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