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7. 화.


어제 집에 멀리서 손님들이 오셨다. 일주일 전 미국 중부의 오클라호마(Oklahoma)를 떠나 이곳 서부, 태평양과 맞닿은 곳까지 자동차를 타고 달려 왔다. 그리고 여기 샌프란시스코를 반환점으로 해서 오늘 다시 중부로 향해 떠났다. 정호승 시인의 말을 빌리면, 여행을 완성하기 위해서 돌아간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여행이 완성되려면 애초에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여행은 떠난 곳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완성된다. 만일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인생이라는 여행은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에겐 처음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죽음이 존재한다. 처음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긴 여정,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여행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이라는 여행의 시작과 끝은 같다고 생각한다. 처음 태어나 떠난 곳과 죽어서 돌아가는 곳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일까. 나는 모른다. 가끔 우리 마음의 사랑이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정호승, "시작 메모," <창비문학블로그 창문>


긴 여행의 반환점을 돌아가는 그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 또한 인생이라는 여행의 반환점에, 또는 그 언저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장 몇 초 뒤의 일도 알 수 없는 우리 인간이지만, 한국 남성들의 평균수명을 고려해볼 때 지금 내 나이가 딱 절반 쯤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의 여행은 '떠나는 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을 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이제 나의 여행은 '떠나 온 곳', 곧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이 여행의 결승점의 테이프는 '죽음'이다.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반환점을 돌고 있다는 것이 좀 서글프기는 하지만, 여행 중 집으로 돌아갈 때의 느낌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오전에 손님들을 배웅하고 아내와 함께 열심히 집정리를 한 뒤에, 점심부터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플라타너스의 푸른 잎들이 여름 바람에도 하나둘 떨어지는 창가에 앉아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는 즐거움을 누렸다. 독자를 책장에 붙들에 매는 '꽁지 작가'의 글재주와 다큐멘터리 <인간 극장>의 주인공들이 되고도 남을 것 같은 지리산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할 일도 제쳐두고 책을 읽다가 늦은 밤에서야 아쉬움 속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실패와 회의와 새로운 도전 속에서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지리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출발지로 돌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기인(人)'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읽는데, '나는 앞으로 어떤 길로, 무엇을 하며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까, 여행을 완성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물론 질문만 떠오르고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학위를 따고 졸업을 하게 되면 그 답도 알게 될까? 졸업을 하고 어디서든 자리를 잡게 되면 무언가가 보일까? 그것도 알 수 없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 내 마음의 사랑이 가는 대로 한 걸음씩 가다보면 결국 인생의 출발점이자 목적지인 그분, 사랑 그 자체이신 그분에게 이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지팡이만 짚고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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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8. 토.



토요일 오전, 빨래와 청소를 하고 나니 '급' 피곤해졌다. 마루바닥에 뻗어서 잠시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기초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오후 늦게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요즘 내가 하는 운동이라곤 산책이 전부이다. 몸을 별로 움직이지 않는 게으른 운동. 오늘도 운동은 별로 되진 않았지만, 길을 걸으며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유익했다. 허약한 남편이 "닳을까봐" 아껴주는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흐리고 바람이 부는 약간 쌀쌀한 날, Mint Mojito Iced Coffee를 마시니 정신이 바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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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5. 수.


버클리에 돌아온 지도 벌써 열흘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이웃들이 함께 울어주고, 위로해 주었다. 몇몇 분들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니 너무 슬퍼하지도 후회하지도 말라고 말해준다. 모든 일어난 일들을 결과론적으로 '하나님의 때' 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에는 저항감이 있으나, 사람의 이해와 바램을 뛰어 넘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분노를 완전히 버리고 용서해야 하는 때라는 사실이다. 그 사이에 병원과의 대화가 진전 되어 드디어 어제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 일로 아버지와 같이 슬프게 돌아가시는 분이 생기지 않는다면, 최소한 줄어든다면,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내 맘 속의 분노와 원망의 감옥에 가둬 두었던 이들을 놓아 보내려고 한다. 이번 일이 젊은 의료진이 의사로서 성장하는 데에, 그리고 앞으로 많은 생명을 살리고 치료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 한국에 있는 동생 내외는 "순국선열을 기리는 현충일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 소풍에 간다고 한다. 나도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제부터는 새로운 책 번역을 시작했고, 곧 중단된 공부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어제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고 버클리 다운타운에 나갔더니 이정표에 꽃이 피었다. 내 삶의 이정표에도 분홍색 장미꽃이 피기 시작했다.


논문을 읽고서

아직도 깊이를 해득할 수 있는 몇 번의 탐독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관계 문헌을 읽고 이해를 가져야겠지만 개략적인 면에서 영성이란 우리 교인이 가져야 할 신성한 품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로서 자식의 전도의 의해 교회에 나가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아직도 너무나도 부족하다. 잘 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신령한 품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혁일이가 형식화된 경건적 신앙을 벗어나 신령한 품성으로 허약한 신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도록 어려운 과정 중에서도 개척되어 나가는 면모를 볼 때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따라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찬란하고 성스러운 도전 앞에 있는 나의 아들에게 그 꿈 이루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2004. 6. 4.

청천(淸川) 



약 십여 년 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며 쓴 논문을 아버지께 드린 적이 있다. 많은 기대를 걸고 있던 아들이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데에도 반대하지 않으시고, 힘을 다해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셨던 아버지가 고마워 논문을 드렸지만, 초신자이신 아버지께서 전문용어가 많은 학술논문을 직접 읽으시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아버지께서 내 논문을 읽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품들 속에서 위의 글을 발견했다. 먼저 논문 속에 나오는 주요 개념들과 어려운 신학 용어들을 자료를 찾아 정리해 놓으시고, 그 아래에 논문을 읽고 난 감상을 적어 두셨다. 이 글을 읽는데,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 글은 특히 아버지의 신앙, 그리고 믿음을 가지시면서 그 성품이 참 온화하게 변해가셨던 아버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아버지의 육신은 이미 재가 되어 버렸지만, 당신의 생명은 나와 우리 남매들에게 전해져 우리들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 남매가 이땅에서 맺는 열매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리고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나눠주신 생명과 가르침, 기도가 열매 맺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글을 읽으며, 공부가 어렵다고 낙심하지 않고 교회와 세상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좋은 글들을 써서,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2013. 6. 4. 아버지의 일흔 두 번째 생신에.


2013. 5. 26. 주일.


가슴이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깨었다. 꿈에 아버지와 함께 병원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를 담당했던 의사가 그 옆을 지나갔고, 그를 본 아버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셨다. 의사는 매우 당황해했고, 난 아버지를 진정시켜 드리려고 하다가 깨어났다. 너무 생생했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참 동안 마음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꿈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오늘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기에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어머니와 함께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고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부산에서는 미국까지 직항이 없기 때문에 인천으로 가서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동생 가족이 김해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서 한국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라며 점심을 사준다. 약 5년 전 처음 유학을 나올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중에 아버지도 계셨다. 내가 탑승을 위해 들어갈 때 뒤에서 슬쩍 눈물을 닦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리고 지난 1월 내가 비자 갱신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 왔을 때 아버지는 다시 살짝 젖은 눈으로 나를 맞아 주셨다. 그래 또 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그때도 아버지는 눈물을 훔치셨다.



설 전날 밤

 

 

이젠 아버지의 키를 훨씬 넘어버린

아들에 대한 대견함인가.

아들의 대학 합격 발표를 듣고

평소엔 손 한 번 잡지 않던

아들 몸뚱아리 와락 끌어 안으며

잘했다 잘했다 외엔

더 이상 말 잇지 못 하시던 아버지.

 

어릴 적

지붕에 메주만 매어 달아도

쓰러질 것 같던 찌들린 집안살림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가난한

촌사람의 설움이

지난 50년 동안 가슴 아팠던 절절한 사연이

모두 씻기어 눈물로 녹아 내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도

어느덧 깊게 패여진

눈가의 주름살 사이로

눈물 흘러 내리는데

 

일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새삼 아들의 가슴에 되살아나

잠 못 이루고 괜히 뒤척거리는

오늘은

자면 눈썹 하얗게 센다는

///

 

1994년 구정


아주 오래 전에 쓴 시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잘못된 부분이 있다. '경상도 사내'였던 아버지는 평소에 자녀들 손을 잡아 주시는 것은 거의 하시지 않으셨지만, 한 번씩 약주를 하고 오시면 우리 남매들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며 애정 표현을 많이 하시곤 했다. 사실 난 스물 살까지는 아버지에 대하여 불만도 있었고, 아버지와 그리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아주 엄하신 편이었기 때문에 눈치를 많이 보기도 했고, 허락을 받을 일이 있을 때는 거의 어머니를 통해서 말씀드렸다. 그런데 내가 대학  1학년 때 "네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말해 준 교회 선배 성훈이 형과의 대화를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고, 또 이해가 깊어지자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점점 깊어져 갔다. 그러나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난 지금까지도 따라잡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디로 가야할까?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대문 앞에 홀로 서서 차를 타고 떠나는 우리 부부를 향해 손을 흔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물론 동생 가족이 가까이에서 최선을 다해 모시긴 하겠지만, 어머니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나게 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것처럼, 혹시 어머니도 갑자기 돌아가시게 될까 두렵다. 또한 공항에서 헤어진 동생의 어깨가 참 무거워 보인다. 몸을 비행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있다. 한 달 전 아버지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며 한국으로 건너갔는데, 지금은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돌아 가니 마음이 참 복잡하다. 그때와 상황은 다르지만 이번에도 역시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노트북을 꺼내서 지난 일들을 정리한다. 병원과의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한다. 아마도 꿈에서 느낀 아버지의 분노는 아직도 바다에 버리지 못한 나의 분노일 것이다. 뜬 눈으로 밤을 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