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 Heart Healer


요즘은 동네 슈퍼마켓에서부터, 팬시점,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맛있고, 예쁜 쵸콜릿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온 것이다. 핑크빛으로 장식된 진열장과 달콤한 색의 초콜릿을 보면 서른에 접어든 나도 가슴이 슬며시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번 보고서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Break heart Healer"! 지난 주 노영이랑 같이 들렸던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출시한 새로운 종류의 아이스크림 이름이다. "break heart healer". “깨어진 마음의 치유자”, 그것이 바로 그 아이스크림의 이름이었다. 마음이 상한 사람이, 또는 관계가 어려운 연인이 함께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마음이 치유되고, 사랑이 회복된다는 식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정말 그런 효과를 가진 아이스크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있다면 제일 큰 통으로 몇 통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음이 상할 때마다 퍼먹을 것이다. 때로는 가족들과 함께 먹고, 또 실연당한 친구를 위해 한 통 선물하기도 하고, 관계가 어려운 직장 동료나 교회 사람들과도 함께 먹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부시 미대통령과 후세인,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김정일에게도 몇 통씩 보낼 것이다. 녹지 않게 드라이아이스를 가득 넣어서...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아이스크림은 이 세상에 없다. 물론 아이스크림이 치유와 화해의 매개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그런 효능을 가진 아이스크림은 없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태복음 935)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라’. 이 중 세 가지가 치유 사역이다. 실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약한 것을 담당하셨다. 주님은 우리와 같은 육체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모든 약함을 경험하셨으며,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그의 공생애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계시며, 병자들을 치유하는 데에 보내셨다. 그 치유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와, 혈루병 여인의 이야기 등에서 볼 있는 것처럼, 그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즉 온 영혼을 고치는 치유였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은 주님을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고 하였다. 주님은 우리의 진정한 치유자이시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태복음 101)


다음으로 주님은 열 두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을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치유자로 삼으셨다. 우리는 이처럼 주님을 뒤따라 이 세상을 치유하는 치유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의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교회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상한 자를 고치는 치유의 사명을 부여 받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아야 한다.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새 구두를 사서 아무리 조심해서 신어도 상처가 나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상처 없이 살아가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치유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사역이다. 그래서 난 우리 청년1부 공동체가 주님의 치유가 있는 치유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주일 4부예배와 토요집회에서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치유가 일어나는 공동체, 조모임과 또래모임 등에서 서로서로 치유자가 되어 상한 마음이 회복되는 공동체, 나아가서 한 사람 한사람이 가정과 세상에서 마음이 깨어진 자들을 치유하는 치유자로서 살아가는 공동체, 우리 영등포교회 청년1부가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것은 단순한 나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주님의 사역을 이어서 완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망이 현실로 실현되길 기도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장 먼저 내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질병이 있을 때는 그 것을 의사에게 내어보여야 하는 것처럼, 꼭꼭 숨겨졌던 상처들,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싫어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 놓았던 흉터들을 이제 조금씩 주님과 지체들 안에서 열어보여야 한다. 그러할 때 주님의 치료는 시작될 것이며, 우리 자신이,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치유자로, 치유공동체로 서 나갈 것이다. Break Heart Healer로 변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2003. 2. 12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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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교회 4부예배 목회칼럼

2003. 1. 26.

 

아버지의 절규

 

 

작은 산골 마을에 한 농사꾼이 살고 있었다식구라곤 열두 살 난 아들과 황소 한 마리가 전부였는데어느 날 아들이 그만 집을 나가고 말았다그날부터 그 농사꾼은 만사를 제쳐두고 사방팔방 아들을 찾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을 보지 못했냐고 물었다아버지는 목놓아 울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그러나 아무리 찾아다녀도 아들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그러기를 며칠 후아버지는 시내 중심가의 유명상점으로 가서 그 앞에다 큰 광고판을 세웠다광고판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덕배야사랑한다집으로 돌아오너라내일 아침 여기서 만나자.” 다음날 아침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광고판을 세운 상점으로 갔다아들 덕배가 사람들 틈에서 차마 나오지 못하고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덕배야이 녀석아!”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자 덕배는 달려와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두 사람은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서로를 꼭 껴안았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떠난 우리를 먼저 찾으시는 아버지이시다간절히 찾아 헤매시고목놓아 부르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그리고 농사꾼이 아들을 찾기 위해 시내 중심가에 광고판을 세운 것처럼하나님은 이곳에 교회를 세우시고특히 우리 청년들을 위해서 4부예배를 시작하셨다이제 남은 일은 우리가 먼저 내미신 아버지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이며그분의 품안으로 달려가는 것이다예배에 참석하고예배 가운데 마음을 열고 주님의 임재 가운데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곧 설이 다가온다아마 다음주 목요일 저녁부터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질 것이다요즘 청년1·2부에서는 수련회가 진행되고 있다이번 수련회를 통해서그리고 오늘과 매주의 4부예배를 통해서 명절이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듯우리를 간절히 찾으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자그동안 숨가쁜 삶으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자주님은 바로 이 순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다귀를 귀울여 보라가슴 미어지는 그분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사랑이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 2장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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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초대글

나에게로, 그분에게로 떠나는 여행

 

언제쯤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6년 전 어느 날 아침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아침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강의실까지 쉬지 않고 뛰어야만 했다. 가끔 뛰어 다니긴 하지만 그날은 특히 시간이 빡빡하였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고, 가방도 팔이 늘어날 것처럼 무거웠지만, 나는 땀을 흘리며 운동장 옆으로 길게 뻗은 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상상해보라.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휘청거리며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그런데 그렇게 한참 뛰다가 갑자기 내가 지금 왜 이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석부 내 이름 옆에 지각 표시를 하지 않기 위하여 헐레벌떡 뛰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한 것 같아 중간에 뛰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뛰기를 멈추자 비로서 눈 앞의 건물 위로 파랗게 펼쳐져 있는 하늘과 평화롭게 떠있는 구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그렇다. 우리는 때로 너무나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힘에 지나는 많은 일들을 하며, 과거 내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헐레벌떡 뛰었던 것처럼, 그리고 요즘도 종종 그러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하늘을 바로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가지만 하루 종일 하늘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땅바닥을 쳐다보며 집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


이와 비슷하게 요즘 우리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바다 속에서는 몇 시간이고 헤엄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게임을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는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을 피상적으로 밖에 알지 못하며,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를 갈망한다. 이번 수련회에서 우리가 성격검사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신을 조금이라도 알기를 시도하겠지만,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면 우리 자신의 내면의 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이와 관련하여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융은 인간의 내면을 여러 층으로 분석하여 무의식의 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그곳은 바로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며,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은 곧 올해 청년부의 주제이자, 이번 수련회의 주제 말씀인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라라는 주님의 말씀과 상통한다. ,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그분과 만나게 될 때에만이 내가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이 내 안에거하시는 온전한 연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과의 온전한 하나됨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수련회는 우리가 내면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아주 효과적인 시간이다. 성령님은 오랜 기도와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수고로 준비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를 우리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안내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이곳 수련회에서 우리를 만나실 준비를 끝내시고 기대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삶의 쳇바퀴 속에서 헐레벌떡 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출 때에야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23일간의 겨울수련회 참여할 때 우리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을 초청하는 당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 그리고 그 본성에 반응하여 진정한 자아에로의 여행을 떠나라. 그것은 곧 하나님께로 가는 영적 여정이다.


2003년 1월 23일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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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의 이름으로 만나는 우리

 

며칠 째 강한 추위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여러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 보고 싶어라!^^ (닭살 돋죠?)

 

전 지금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왔답니다.

가족들도 만나고,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나고 있어요.

전 이렇게 여유 있게 보내고 있지만, 여러분들은 연말이라 많이 바쁘게 보내고 있겠군요.

공부하시는 분들은 아직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은 이들도 있겠고, 일하시는 분들은 연말정산과 송년모임들로 이제 한참 바쁘겠네요. ^^

 

이젠, 정말 한 해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연초에 세웠던 계획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물론, 계획대로 실천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것이 많을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패배감을 두려워하지 않고 겸손히, 그리고 차분히 한 해를 돌아본다면, 올해의 결실을 들판에 내버려 두지 않고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으며, 또 내년엔 보다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을 토대로, 성탄절이나 송구영신 예배 때 있을 청년부 모임에서 서로 나누며 기도하면 서로에게 아주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비록 몸은 떠났지만, 여러분 생각을 참 많이 한답니다. 그리고 간간이 소식도 듣고,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이번 12월 한 달은 청년부에게 있어서 여러모로 어수선하고 과도기와 같은 시기이겠지만,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든든히 지키고 계시니 힘내서 잘 보내세요혼자서는 힘들겠지만, 함께 하면 훨씬 쉬울 겁니다.

 

지난 두 주간은 청년예배에 빠진 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물론 주일 공예배에는 참여하신 분도 있겠지만, 우리 청년예배와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아요.(불조심 표어처럼 말이예요)

 

김창호라는 한 산악인이 이라는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읽었는데, 그는 나는 둘이 함께 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혼자 갑니다라고 말을 하더군요. 실제로 그는 홀로 히말리야 빙하를 탐사하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는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산악인이라고 해도, 팀을 이루지 않고서는 높은 봉우리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 우리의 영적여정도 산악등반과 같다고 생각해요. 결코 혼자서는 오를 수 없지만, 믿음의 동역자들, 지체들과 함께 하면 오를 수 있는 길. 때로는 서로의 짐을 나눠 지고, 때로는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어 지탱해주고, 서로의 체온으로 언 몸을 녹이고, 조금의 식량도 함께 나누는 그런 동역자가 있을 때 우리는 거센 눈보라가 휘날릴지라도 언젠가는 우리가 올라야할 믿음의 산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요...

 

여러분에겐 화평교회 청년부라는 훌륭한 동역자들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모든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반자의 이름으로 만나 우리를 이루어감을 기억하세요당신은 화평교회 청년부 공동체에 꼭 필요한 사람이잖아요^^

 

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주후 2002. 12. 13.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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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년의 사랑


 

엄마가 이혼을 한 후 십대인 딸은 점점 반항아가 되어갔습니다.

"대체 몇 신데....."

엄마는 밤마다 대문 밖에서 딸을 기다렸습니다.

밤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툭하면 사고를 쳐서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는 딸, 엄마의 주름은 늘어만 가고 딸이 빠진 수렁은 깊어만 갔습니다.

 

"제발 상관 마. 내가 어떻게 살든!"

딸은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멋대로 살 테니 이제 제발 포기하라며 자꾸만 거칠고 모나게 뒤틀려 갔습니다.

 

"가족? 흥 그게 뭐야. 다 필요 없다구."

툭 하면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기 일쑤였습니다.

"승희야 제발... 문 좀 열어 봐."

 

그 딸이 열여덟 살이 되던 생일날이었습니다. 새벽같이 나간 딸은 한밤중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엄마는 시간을 되돌려 놓고만 싶었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딸아이를 위해 선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날도 12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온 딸은 책상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상자에는 편지와 함께 작은 돌멩이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뭐야!"

또 뻔한 잔소리려니 하고 심드렁하게 편지를 읽던 딸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돌의 나이는 20억 년이란다. 내가 널 포기하려면 아마 그 만큼의 시간이 걸리겠지..."

 

딸은 비로소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두터운지 깨달았습니다.

딸은 곤히 잠든 엄마의 머리맡에 앉아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20억년은 너무 길다. 그러니까 엄마... 나 포기하지 마."

 

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딸은 그날 밤, 긴 방황을 끝내고 엄마 품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승희는 가슴에 아주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이 깨어진 경험은, 승희의 마음에 원망과 상처를 가득 채워, 승희로 하여금 가족을 거부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승희의 반응은 반대로 승희가 얼마나 부모님의,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한 것은 결국 엄마의 포기하지 않는 20억 년의 사랑이었다.

 

'20억 년의 사랑!'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아파하시며, 포기하지 않고 지켜보시는 우리 주님을 생각해 볼 때, 주님의 사랑은 지금으로부터 20억년 이전에도 있었고, 20억년 이후에도 지속될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다.

아니, 주님의 사랑은 나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다.

 

위의 이야기는 'happy endding'으로 끝난다. 아마도 승희의 엄마는 돌아온 딸로 인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두 사람은 서로 끌어 안고 펑펑 울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날 밤은 승희와 엄마가 같은 방에서 손을 꼬옥 잡고 잠을 잤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주님은 기뻐하시며, 자제력을 잃고(?)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실 것이다.

주님께 돌아가자!

20억년의 사랑, 영원한 그 사랑에 마음을 열자, 우리는 그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7)


2002. 11. 4.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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