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3-14장 | 죄와 벌

 

어제 읽은 사무엘하 11장과 12장에는 다윗이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난 첫 아이가 죽게 되었지요. 그런데 다윗의 죄의 결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의 집에서 칼이 영원토록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그 비극의 시작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사무엘하 13장과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맏아들 암논과 그의 배다른 형제 압살롬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 압살롬이 그 형제 암논을 칼로 죽인 것입니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암논이 그의 이복누이인 다말에게 성폭력을 행하고, 그녀를 버린 것 때문입니다만, 궁극적 원인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한 간음죄와 살인죄에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다윗의 집안에서 오빠가 여동생에게 성폭력을 행하고, 형제가 형제를 향해, 아들이 아비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비극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일단 오늘 본문 사무엘하 14장에서는 요압의 중재로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내일 읽게 될 15장에서는 더 큰 갈등과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 장면을 읽다가 보면 생각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46-7절인데요, 하나님은 시내산에게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은 정말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셔서, 인자를 자손 천 대까지 베푸시며, 악과 과실과 죄는 용서하시지만,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만, 벌을 면제하지는 않으셔서 보응을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51편에 기록된 것처럼 다윗이 통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 죄는 용서하셨지만, 그에게 벌을 내리셔서 그의 집안에서 형제와 형제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폭력과 살인과 복수가 끊어지지 않게 하신 것이지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읽다가 보면, 하나님은 참 무서운 분, 또는 정확하신 분이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주시기는 하지만, 벌은 내리시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관해서 우리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그 보응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짐승의 피로 드리는 속죄제와는 달리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기는 우리를 위하여 그 보응을 대신 받으신 것이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그 보응에 대해서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인해 받은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도록 스스로주의하고 하나님을 도우심을 구하면 됩니다(2:3-4 참조).

그러므로 오늘 새벽 본문 말씀을 읽으며 죄의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목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기도할 때에는 우리가 죄에서 멀리 떠나, 주 안에서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을 완성하며 살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간절히 구합시다(2:8, 2:12).


2018 4 16



Tag 구원, 면제, ,

사무엘하 11-12, 시편 51편 | 멈추고, 돌이키라

 

오늘 본문 사무엘하 11장부터는 다윗의 통치 중기에 일어난 사건들, 곧 다윗의 나라의 기틀이 잡힌 이후 발생한 위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11장과 12장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사건과 솔로몬의 출생을 담고 있는데, 이 사건은 이후에 이어지는 일련의 위기들의 원인이 됩니다.

앞서 사무엘하 8장에서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기 때문에 나라가 외적으로는 매우 튼튼하였고, 내적으로는 태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위기는 이렇게 편안한 때에 발생하지요.

그 위기는 다윗의 범죄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다윗이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다윗의 우발적인 실수로 보기에는 그 과정이 매우 용의주도하게 진행됩니다. 먼저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닐다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다윗이 매우 의지적으로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간접 살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왕궁 옥상 위에서 한 여인을 보고, 재빨리 눈을 돌린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을 자세히 감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여인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출 수도 있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유부녀이고, 심지어 자신의 충복 우리야의 아내인 것을 알았으며, 거기서 멈추었어야 하는데, 또 더 나아가 그 여인을 왕궁으로 불러서 동침하였습니다. 그 후에 우리야의 아내가 임신하자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 우리야를 죽이도록, 일종의 살인 청부를 한 것은 훨씬 더 악한 일이지요.

어쩌면 매우 추하고 잔인한 다윗의 범죄가 성경에 이렇게 자세히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의 범죄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범죄의 소원을 그 마음에 품었고, 그것을 돌이키거나 중간에 멈출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으나 그는 멈추지 않고 의지적으로 나아가 간음하고, 살인까지 저질렀지요. 만약 그가 자신의 마음에 일어난 죄의 소원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게 여기고, 가능한 빨리 멈추고 발걸음을 돌렸다면, 그는 그렇게까지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창4:7 참조). 또한 내일부터 읽게 되겠지만, 다윗의 가족과 그 나라에 그토록 큰 분열과 슬픔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살펴서 계속해서 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돌이켜야 합니다.

다윗은 비록 죄를 지었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가 지적했을 때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매우 깊이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의 기도가 오늘 읽을 시편 51편입니다. 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더 좋지만, 만약 죄를 저질렀다면, 가능한 빨리,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혹시 깨닫게 하시는 죄의 소원이나, 죄악이 있다면, 솔직하고 겸손하게 돌이킴으로 하나님의 은총에서 멀어지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 4 15



Tag 성찰, , 회개

사무엘하 7-10장 |  소원과 기도

 

오늘 본문 사무엘하 7장에서 10장까지는 다윗의 통치 초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계속됩니다. 먼저 7장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했던 이야기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과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장에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승리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으며, 9장에는 다윗이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호의를 베푼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10장에서는 다윗이 암몬과 아람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 중에 오늘 새벽에는 기도에 도움이 될 만한 교훈 한 가지만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곧 읽게 되겠지만, 다윗은 자신은 좋은 집, 곧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장막 안에 거하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고 싶다는 뜻을 비추었지요. 그러자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므로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전쟁으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짓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더욱 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화려한 성전이 있고 없고가 하나님께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어, 다윗의 집을 든든하게 세우실 것이며, 다윗의 아들을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기를 원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11절의 말씀과 같이 다윗의 집을 짓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윗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다윗이 자신의 소원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8절 이하에 있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고,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기도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도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강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는 것은, 하나님께 그 소원을 그대로 이루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원을 하나님의 소원에 맞추어가기 위해서 아뢰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의 소원에 복종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을 자신의 소원으로 삼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신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주님은 고난의 잔이 옮겨지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셨습니다.(26)

오늘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나오셨습니까? 오늘 새벽 그 소원을 주님께 아뢸 때, 우리 소원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만져 주시고, 하나님의 소원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대하며 나아갑시다



2018 4 14



Tag 기도,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