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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찬란한 아침에
하늘 향해 열린 숲속의 창 아래 서니
날개가 펼쳐진다

2018. 5. 10.


달랑   

달랑

단추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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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밤늦은 시간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웃지 못할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한 중년 남성이 상체가 왼쪽으로 30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졸고 있었는데, 90도 가까이 꺾인 머리가 두 칸 옆에 앉은 한 젊은 여성의 어깨를 주기적으로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여성은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앉아 그 남성을 불쾌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잠에 빠진 중년 사내의 머리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남성과 여성 사이의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못 본 듯, 그저 서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는데, 문득 시 한 편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그 남성과 여성 사이의 빈자리에 앉아 술에 취한 남성의 머리를 어깨로 받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기울어진 몸과 머리가 누르는 힘이 어찌나 센지 저는 옆의 여성에게까지 밀리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을 잔뜩 준 채 버티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금방 다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를 다시 떠올리며, 목적지까지 버텼습니다. 이 날 저를 남들이 마다하는 자리에 앉아 버티게 한 시는 김응교 시인의 단추입니다.

 

단추

 

옆 사람이 심하게 졸고 있다

객차가 흔들릴 때마다 내 어깨에 머리를 박는다

검은 넥타이를 보니 상가에서 밤새우고

자부럼 출근하는가 보다

 

와이셔츠 단추 하나가 떨어지려는데

꿰매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그나 나나 비슷한 처지라며

작은 단추가 봉지처럼 달랑거린다

 

가만 어깨 베게 대줬더니

손에 들린 신문처럼 반대편으로 넘어간다

반대편 사람도 저무는 어깨를 대준다

단추도 우리도 악착같이 붙어 있다

 

이 시는 최근 발간된 김응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2018)에 실려 있지만,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서울 시내 어느 지하철 역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되어 여러 사람들의 눈길을 끈 작품이기도 합니다. 좁은 지하철 좌석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박으며 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드문 경험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흔한 경험을 낮선 이에 대한 따뜻한 친절과 시적 통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시를 써내었습니다.


먼저 1연에서 시인은 옆 자리에서 심하게 졸고 있는 낯선 사내를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좌석은 비록 엉덩이를 올려놓으면 꽉 차는 좁은 공간이지만, 전 날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출근길에는 잠시나마 긴장을 내려놓고 쉼을 누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중한 쉼을 방해하는 옆자리의 승객을 시인은 경계나 원망의 눈초리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검은 넥타이를 매고 졸고 있는 그 사람이 지금은 출근길 지하철 좌석에서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지만, 지난밤에는 어느 상가에서 애통하는 그 누군가의 곁을 밤새 지켜준 의리와 연민이 가득한 존재라고 추측합니다.


2연에서 시인의 시선은 사내로부터 자신에게로 옮겨집니다. 자신의 와이셔츠에서 떨어질 듯 달랑거리는 거리는 단추를 보며, 그는 봉지처럼 흔들리는 사내와 동질감을 느낍니다. 시인은 단추가 달랑거리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다시 고쳐 꿰맬 여유도 없이 아침이면 바쁘게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생활에 묶인 사람입니다. 또한 옆 자리의 사내도 상가에서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보통의 시민입니다.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시인은 옆자리의 사내에게 자신의 어깨를 빌려 줍니다.


3연으로 가면 이제 시인의 시선은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까지 확장됩니다. 시인이 사내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어 주자 그는 손에 들린 신문처럼힘없이 반대편으로 넘어갑니다. 그 가련한 인생에게 반대편 사람도 저무는 어깨를대어줍니다. 그 사람의 어깨가 해가 저무는 것처럼 가라앉은 것을 시인은 알아챕니다. 이쯤 되면, 중간에서 좌우로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은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양옆의 사람들을 긍휼과 공감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이러한 확장된 연민과 동질감 속에서 이 시는 단추도 우리도 악착같이 붙어 있다는 선언으로 끝이 납니다.


단추같이 악착같이 붙어 있는 인생, 이 말은 상가에서 밤을 지새우고서도 출근길에 올라야하고, 단추를 꿰맬 시간도 없이 이른 아침 버스나 전철에 몸을 실어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는 듯합니다. 그러면 시 속의 그들은, 아니 우리는 무엇에그리 악착같이 붙어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힘으로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달랑거리고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남기며, 문학에세이 연재를 끝맺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Magazine Hub 62 (2018년 6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오늘도 찾아오시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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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함께 모임을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같은 학교를 졸업한 네 사람이 함께 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퇴근 시간, 차가 밀려 거북이걸음을 하는 동안 차 안의 대화는 자연스레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네 사람이 다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화제가 된 선생님들이 학교에 제법 오래 계신 분들이어서 우린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며 추억에 잠기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들은 학교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학교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를 형성하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또한 선생님들은 역사 속의 어떤 시기를 살아가는 역사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황선생님〉이라는 시에는 ‘선생님이라는 역사’가 담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황선생님 


사월 그날이 오면 마당조회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혁명공약 몇 줄이 

책의 등짝마다 낙인처럼 박혀 나오던 시절인데 

까까머리들 모아놓고 

교장 선생님은 황선생님을 조회단에 부르셨다.

대학 다니시던 때 맨주먹 총부리에 까이우며

몸 분지른 선생님이라 하셨다.

우리가 다니던 그 학교 울타리엔

유독 버드나무가 많았고

버드나무처럼 몸이 가는 황선생님은

조회단에 오르셔서 느리고 느린 사투리로

차돌만하게 보이는 주먹을 들고

몇 번인가 자유라는 말씀을 하셨고

운동장 조회가 끝나고 사회 시간이 되어서도 

한 시간 내내 그 말씀만 더 하시곤 했다. 

그때 우리를 가르치시던 그 많은 선생님들이

교장이 되고 교육장이 되고 무엇이 되었다는데

누구도 황선생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리던 

황선생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아득히 살아

자라서 우리가 선생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정성스레 교실문을 열며

굳고 단단한 몇 개의 글자 위해 몸 깎다

백묵처럼 부러지고 싶을 때

황선생님은 눈록색 버들잎 주렁주렁 흔들며

아침 안개 엉긴 창 안을 기웃대고 계셨다.

해마다 사월 명지바람 부는 때

버드나무잎으로 흔들리고 계셨다.


-〈황선생님〉 전문


      이 작품은 도종환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고두미 마을에서》(1985)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의 후기에서 시인은 역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운 피붙이와 내 자신 속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처럼 시인은 이 시집에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황선생님〉의 본문에서 “사월 그날”이란 4·19 혁명이 일어났던 4월 19일을 말하고, 책의 등짝에 찍혀 나오던 “혁명공약”은 ‘혁명’이란 이름으로 4·19 혁명의 열매를 물거품처럼 만든 5·16 군사정변을 선전하는 문구들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군사 정권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던 엄혹한 시절에 조회단과 교실에서 차돌같이 조그맣지만 단단한 주먹을 들고 “자유”를 이야기한 황 선생님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학 시절 “맨주먹 총부리에 까이우며 / 몸 분지른 선생님”이 굵고 튼튼한 나무가 아니라 가는 버드나무, 그것도 사월의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연초록의 버드나무에 비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시인이 다니던 학교 울타리에 유독 버드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황 선생님’과 ‘버드나무’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결합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진한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군홧발로 자유를 짓밟은 ‘혁명군’과 대비되는 인간적인 이미지로 황 선생님을 그려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비록 황 선생님을 아는 그 시기의 다른 선생님들은 교장이나 교육장이나 그 어떤 높은 지위에 올라도 황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는 학생들의 뇌리에, 최소한 자라서 교사가 된 제자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된 제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정성스레 교실문을 열며 / 굳고 단단한 몇 개의 글자 위해 몸 깎다 / 백묵처럼 부러지고 싶을 때”, 황 선생님은 사월의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사귀들 속에서 나타나 창 안을 기웃대며 제자들을 격려합니다. 이렇게 황 선생님은 시적 화자의 과거 기억 속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오늘도 명지바람과 함께 그를 찾아옵니다. 살아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생님, 특히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은 우리의 어제와 오늘의 역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오월이 되니 이런 선생님들이 더욱 생각나고 그리워집니다. 선생님들을 찾아뵈어야 하는데, 오히려 선생님들이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Magazine Hub 61 (2018년 5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