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



빠져나갈 수 없는 

초미세먼지를 뚫고

그리움이 찾아온 날

한 손엔 시집 들고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동네 조그만 편의점을 찾는다


값싼 아메리카노 한 잔 값으로

컵라면 붉은 눈물이 얼룩진 

테이블 구석 자리를 구매해서

잠시 호사를 누리자


화초를 키우듯

해가 잘 드는 곳에 시집을 놓고

시 한 편 읽을 때마다

커피 한 모금 홀짝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내려 머리를 뒤덮고

돌아가신 아버지 

창밖에 뒷짐지고 서서

날 보며 빙긋 웃으시네

한 살 배기 아들은 

어느새 소년이 되어

다정한 얼굴로

엄마가 찾는다며 아빠를 부르러 와서

외로운 내 등을 만진다


아들아,

그리운 아들아,

가자 이제 함께 

집으로 가자


2018. 3. 30.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마태복음 27:27-31)

로마 군병들은 가여운 죄인을 노리개로 삼아 조롱하며 낄낄거렸다. 그것이 그들의 지루함이나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희롱(戲弄)은 희락(喜樂)이 아니다. 참된 기쁨은 가련한 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진심으로 ‘경배’하는 자에게 있을 것이다. 참된 예배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신 주님처럼, 겸손함으로 허리를 동이고 약하고 가난하거나 곤궁에 빠진 이들을 섬기고 돕는 것이리라.

주님은 이렇게 희롱을 당하심으로, 세상의 모든 희롱을 당하는 이들이 주님과 고난 가운데 연합할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열어 주셨다.

2018. 3. 29. Holy Thursday.


"The Mocking of Christ"(c.1596) by Annibale Carracci


목련



언제쯤 필까 너는

이십 년 전 

짝사랑에 빠진 내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어 놓던 

하얀 꽃


도서관 앞을 서성이며

네가 내 그리움을 알아채고

환하게 피어나기를

날마다 기도했어


아직도 

기다리네


아기처럼 보드라운 너를 

너처럼 어여쁜 아기를

다시 만나 매만지게 될

이십 년 전 사월의 어느 날을

영원한 설레임의 순간을


아직도

영원히


2018년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