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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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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한 부자 청년이 자기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서 발걸음을 돌린 것을 보고, 주님께 자신과 다른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로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먼저, 당신과 복음을 위해서 재산이나 가족을 버린 사람들은 현세에 있어서 가족과 재산을 백 배나 받겠지만, 그 보상과 더불어 박해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내세에는 영생을 얻게 되겠지만,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현세에 대한 말씀부터 살펴보면, 가족과 재산을 백 배나 받는다는 것은 개인의 재산과 가족이 수적으로 증가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우기 시작하신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서 많은 가족을 얻고, 그들과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될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박해는 죄의 결과나 징벌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에게 주어지는 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박해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더욱 진실해질 수 있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고난까지 따라가 주님과 하나가 되는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내세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영생을 얻겠지만, 그것을 얻는 자는 일반적인 기대와 다를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앞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 보면, 제자들은 가장 미약하고 무력한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은 꾸짖었지만, 부자 청년이 주님께 나아오는 것은 전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부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이기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을 잘 지킨 부자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천국은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가 전복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며 가족에 대한 의무를 소홀이 하는 것의 핑계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신랄하게 지적하였습니다(딤전 5:8). 다만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가족이나 재산에 대한 집착일 것입니다. 이 말씀 중 내 마음에 와닿거나 걸리는 구절이나 단어가 있습니까? 반복해서 읊조리고 묵상하며 주님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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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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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이 많은 젊은이가 괴로움 속에 등을 돌리고 떠나간 후, 예수님께서는 주변의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며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라며 탄식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그들이 놀라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더 쉽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더욱 크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매우 큰 동물인 낙타가 매우 작은 구멍인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은 어렵다 못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단 재물만이 아닙니다. ‘뭔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지식이든지, 경험이든지, 자존심이든지, 상처이든지, 또 다른 어떤 것이든지 간에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자신의 것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그 앎이 그의 의지까지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오직 괴로워할 뿐입니다. 이것이 연약한 우리 인간의 딜레마입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괴로워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바람과 달리 의와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납니다. 당황한 제자들이 “그러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며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불가능한 일을 능히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사람이 얻어낼 수 있는 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구원의 능력은 우리의 의지나 이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혹시 지금 내가 가진 제한된 자원들로 뭔가를 이루려고 발버둥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그런 것들이 있다면, 주님과 진솔하게 대화하며 자신이 처한 곤경이나 딜레마를 주님 앞에 내어 놓고 도우심을 구합시다.  그리고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들도 행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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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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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을 떠나실 때 한 사람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그는 혹시 주님을 놓칠까 염려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는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정말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에게는 매우 절박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어지는 대화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키며 경건한 삶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보통 유대인 소년들은 열두 살이 되면, ‘율법의 아들’이 되어 율법의 일정 부분을 지킬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한 관습대로 그도 소년시절부터 율법을 착실하게 지켜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영생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부족한 한 가지를 더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십계명을 비롯한 각종 계명들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기 비움과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기죽게 하려거나,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사람을 쫓아버리려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더 높은 길을 알려주시며,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초청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근심하였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깜짝놀라고 슬퍼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충격과 번민 속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자기 길을 갔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나에게는 영생을 소원하는 마음,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그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주님께 솔직하게 말씀 드리고,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그 간절한 부탁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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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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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여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아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아이들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겠지요. 제자들의 행동은 당시 문화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어린아이들은 매우 낮고 하찮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을 진심으로 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노하시어 그들을 호통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오히려 아이들을 높이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마도 제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분노하셨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중 어떤 이들은 당시의 급진주의자들처럼 하나님 나라는 ‘무력’(武力)으로, 최소한 어떤 영적인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반대로 가장 무력(無力)한 존재, 곧 가장 힘이 없는 아이들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어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방법, 또는 가장 불가능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순수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죄가 없는 완전히 순결한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의심이 적고 잘 믿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지혜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한 믿음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당시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여 너무나 인간적인 수단으로 이루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당신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그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당신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당신에게는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이 있습니까? 이 말씀이 마음에 일으키는 생각과 감정들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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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된장독

 

 

흔히 오늘날을지식의 홍수시대라고 말합니다. 불과 이십여 전만 해도 도서관과있는 서가에 꽂힌 백과사전이 권위를 자랑하며 지식의 왕좌에 폼을 잡고 앉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컴퓨터나 손에 있는 작은 스마트폰을 통해 필요한 많은 지식을 얻을 있습니다. 맛집과 같은 사소한 생활 정보는 물론이고, 아주 전문적인 지식까지도 간단한 검색을 통해서 쉽게 접할 없습니다. 그러나홍수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것처럼 과도한 지식이 언제나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온라인 세계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속에서 길을 잃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정보들을 분별하여 사용할 있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구슬이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 중에서 좋을 것들을 선별하여 꿰어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혜는 어디서 찾을 있을까요?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 사는 고진하 시인의 아내는 된장독 안에 들뜷는 구더기 떼로 골머리를 앓다가 어느날 시골 노파로부터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노파에게 들은 대로 착실하게 행합니다.

 

지루한 장마 끝,
된장독에 들끓는 구더기떼를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아내는
건너 사는 노파에게 들었다며
담장에 올린
푸른 강낭콩잎을 따다
장독 속에 가지런히 깔아 덮었다
 
사흘쯤 지났을까
장독 뚜껑을 열어젖힌 아내의 눈빛을 따라
장독 속을 들여다보니
평평하게 깔린 콩잎 위엔
무수히 꼬물거리던 구더기떼가 기어올라와
마른 콩깍지처럼 몸을 꾸부려
뻗어 있었다
 
- 고진하, 푸른 콩잎〉 1, 2.

 

마치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청명한 가을이 오듯 신기하게도 강남콩잎 장으로 된장 속의 구더기들이 깨끗하게 제거되었습니다. 시인의 아내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던 고민거리가 매우 시원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노파의 조언은생활 정보라기보다는생활의 지혜라고 있습니다. “ 건너 사는 노파라고만 나오는 늙은 여인은 비록 현대의 최신 지식과 정보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삶에서 체득한, 또는 그렇게 체득한 누군가로부터 배운 생활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아내는 시골 노파의 조언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듯 푸른 강낭콩잎을 따다가 장독 속에 가지런히 깔았습니다. 이렇게 지혜는듣는 만나야 실제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재미 있는 것은 1연에서 아내가 하는이상한일을 아마도 반신반의하며 옆에서 지켜보던 시인도 2연에서는아내의 눈빛을 따라장독 속을 들여다 본다는 점입니다. 어느덧 시인의 시선이 아내에게 동화되었습니다. 1, 2연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인의 아내인데, 이렇게 시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이어지는 3, 4연에서 시인의 속마음이 노출됩니다.

 

오랫동안 곪은 종기를 말끔히 도려낸 듯
개운한 낯빛으로
죽은 구더기떼와 함께 콩잎을 걷어내는 아내에게
불쑥, 나는 묻고 싶었다
 
온통 곰팡이 꽃핀
눅눅한 마음 한구석
들끓는 욕망의 구더기떼를 걷어내는 데도
푸른 콩잎이 可하냐고

- 고진하, 푸른 콩잎〉 3, 4.

 

된장독에서 죽은 구더기 떼를 걷어내는 시인의 아내는 매우 개운한 얼굴이었습니다. 이때 시인도 함께 즐거워 했을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앞에 보이는 장독 속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에는 여전히 곰팡이가 피어 있고, 욕망의 구더기 떼가 들끓고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아내의 눈빛을 따라 들여다 장독 속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속임을 있습니다. 장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눅눅한 마음으로 인해 썩고 있던 시인의 찜찜한 낯빛이 눈앞에 그려질 듯합니다. 

 

그렇게 장독대 앞에 서서 콩잎을 걷어내는 아내를 바라보던 시인의 마음에는불쑥질문이 하나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질문을  실제로 아내에게 던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문자적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고작 콩이파리 장으로 형체가 없는 마음속 구더기 떼를 걷어낼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적 질문이 알려주는 것은 마음에서 구더기 떼처럼 들끓는 욕망을 제거하고파 하는 간절한 바람이 시인의 내면에서 불쑥 솟구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생활의 지혜가 아니라 참된 지혜로서의푸른 콩잎 찾는 마음입니다. 생활의 지혜는 우리 외부의 사물이나 환경을 바꾸어 삶을 보다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참된 삶의 지혜는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그것들을 탓하는 익숙해져 있지만, 시인은 외부의 사람들과 사물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내면의 욕망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욕망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사는 낡은 한옥을불편당이라 이름 짓고 사는 고진하 시인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불편함을 추구하는 기인(畸人)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불편함은 아마도 생활의 불편함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불편함이 아닐까합니다. 대체로 시인이란 이들은 내면을 썩게 만드는구더기떼 인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 사람, 그래서 욕망들을 걷어내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입니다. 고진하 시인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욕망의 구더기 떼들을 회피하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 눌러 넣음으로써 일시적인 편안함을 누리려 하기보다 차라리 마음이 불편해지기를, 그래서 구더기들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걷어낼 있는푸른 콩잎 찾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피상적인 거짓 평안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한 참된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시인의 바람은 새롭게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그의 내면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던 것인데, 일상의 사건을 통해서 그것이 의식의 영역으로 불쑥 솟구쳐 오른 것이라고 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지혜를 추구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깊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그러므로 잠시 시를 읽으며 우리 마음의 된장독을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어리석고 이상한 질문 불쑥 솟구쳐 오를지도 모르니까요.

 

Magazine Hub 114 (2022년 10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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