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2. 토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했는데, 뿌리 깊은 잡초는 아무리 호미로 쪼아도 잘 뽑히지가 않는다. 이번 주일은 계속 김매기를 하고 있다. 코딱지만 한 밭이지만 잡초가 주변과 고랑은 물론 농작물들 사이에도 버젓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내와 물을 주러 갈 때마다 틉틈이 김을 매지만 녀석들을 완전히 쫓아 버리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흙 밖으로 보이는 부분이 짧다고 해서 잡초를 얕보면 안 된다. 어떤 놈은 밖으로 보이는 부분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뽑아보면 흩밑에서 그 열 배도 넘는 뿌리가 나온다. 그리고 어떤 녀석은 땅 위를 기다시피 해서 20-30 센티미터 정도 뻗어있고 중간중간에 마디에서 뿌리도 내리고 있어 나름 견고하게 터를 확장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시들어가는 호박은 뿌리를 많이 내리지 못했는지 슬쩍 잡아 당겨도 쑥 뽑힐 것만 같아 측은하기 짝이 없다. 잡초들이 땅 속의 양분과 물을 빼앗아가니 농작물들이 '영양실조'에 걸린 듯 하다. 


사실은 이 밭뿐만 아니라, 내 머릿속, 내 마음속에도 이런 잡초들이 무성하다. 뿌리가 깊어 나조차도 그 근원을 다 파악하지 못하는 생각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잡념들. 또는 상처와 두려움들. 이것들은 정작 중요한 생각, 주님에 대한 묵상, 아름다운 덕들(성령의 열매들)이 자라고 영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다. 텃밭의 잡초는 내 손에 달려 있지만, 내 마음의 정원사는 따로 있다. '그대'가 김을 매시도록, 자주 자주 내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오늘 한참 잡초들과 씨름하다가 문득 잡초에 너무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농작물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만 뽑을 것이 아니라, 넘어진 아그들도 좀 세워주고, 양분이 많은 흙도 가져다가 덮어 주어야 하는데……. 기도할 때도 너무 잡념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떠올랐다. 어쨌든 농삿일과 영성생활에는 참 많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래 식물 너네들이랑 우리 인간들이랑 만드신 분이 같으니까.

2012. 9. 16. 주일


어제 오늘은 너무 바빴다. 교회 식구들 몇 명이랑 같이 야외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실제적으로 준비할 사람이 몇 명 없다보니 대부분의 일을 우리 가정에서 해야 했다. 어제는 저녁 늦게까지 장보기와 음식 준비를 하고, 오늘은 바베큐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다보니 밖이 새까매져서야 텃밭에 나갈 수 있었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물주는 것을 하루쯤 건너뛸까 생각하다가도 "우리 아그들 물주러 가야지"라는 아내의 말에 이상하게도 애정이 느껴져서 어두운 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과는 달리 도시의 밤은 그리 어둡지 않아서 우리 밭의 위치와 수도꼭지를 찾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에게 텃밭을 넘겨주신 분께서 밭에 물을 매일 줘야 하는데, 해가 진 저녁에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알려주셨다. 낮에 주게 되면 물방울이 돋보기 역할을 해서  작물이 햇볕에 상하거나, 물이 땅에 깊이 스며들지 않고 빨리 증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수를 끌어다가 꼭지를 돌리니 쏴아 하고 세찬 물줄기가 어둠을 가른다. 호박, 콩, 깻잎, 해바라기, 옥수수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물을 들이마시는 것 같다. 며칠 전까지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 존재도 몰랐던 작물들이 "아그들"이라는 말에 정말 내 아이들이 된 것 같이 정이 간다. 어둠 속에서 물을 맞는 아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욱 흐뭇하다. 내가 수고한 것이라고는 고작 며칠 물 준 것 밖에 없는 이 작은 텃밭에 느껴지는 애정도 이런데, 일 년 내내 새벽 일찍 일어나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농작물에 느끼는 애정이란 얼마나 클까? 그리고 가뭄이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그것들을 잃는 아픔은 또 얼마나 쓰라릴까? 


밭에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끼니때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흐뭇하실까를 생각하며, '저도 그 마음 조금 알아요'라고 아는체를 했다. 하나님이랑 이전보다도 마음이 더 통하는 것 같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녁 늦게 밭에 나갔다. 텃밭 뒤에 난 철로를 따라 기차가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며 지나간다. 식물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잠깐 잠을 설치는듯 하더니, 기차가 지나가자 밭은 다시 고요 속에 빠져 든다. 

2012. 9. 14. 금.


며칠 전 아내가 이사가는 이웃으로부터 텃밭을 이어받아서 가꾸겠다고 했을 때, 난 그렇지 않아도 늘 바쁜데 귀찮은 일이 생기겠구나 생각했다. 지금 사는 마을에 공동체 정원(Community Garden)이 있는데, 원하는 사람들은 일정 구역을 할당 받아 그곳에 과일, 채소, 꽃 등을 키울 수 있다. 그동안 다른 이웃들이 재배해서 나누어주는 호박, 상추, 깻잎 등을 얻어먹는 것은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바쁜 중에 소질없는 농사를 지어야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어제 아내가 가든 열쇠를 받아왔다.


오늘 아침을 먹고, 몸도 찌뿌듯해서 아내에게 가든을 살펴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나  몇 장 찍을 심산이었다. 우리가 이어받은 밭은 두 평 남짓한 땅인데, 아내의 키만큼 자란 해바라기가 화사한 등처럼 밝혀져 있고, 콩, 호박, 토마토 등의 작물이 조금씩 심겨져 있었다. 이전에 이 밭을 가꾸었던 분들이 얼마나 깊은 정성을 심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야채를 나누어 주던 이웃들이 얼마나 소중히 가꾼 열매를 준 것인지를 잘 가꾸어진 밭과 농작물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미 굵게 자란 호박, 그리고 아직 푸른빛을 띠고 있는 토마토 등을 보는데 어느새 신선한 경이감이 상쾌한 아침 공기처럼 마음 속을 가득 채웠다. 우리가 전혀 노력하지 않은 열매, 호박과 콩을 조금 따서 돌아오며, 다음에 직접 정성을 들여 재배한 열매를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기쁨을 상상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이 이 싱싱한 완두콩과 호박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독자들의 마음에 얼마간의 양분이라도 공급해줄 수 있기를 바랬다.

 



내 영혼이 지치도록 주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내 희망을 모두 주님의 말씀에 걸어 두었습니다

- 시편 119:81

 

주님,

지치도록 주님의 구원을 사모해 보지 않은 이는

구원의 참 의미와 감격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모든 희망을 걸어 보지 않은 이는

말씀의 힘과 맛을 알지 못합니다.

 

몽롱한 저의 영혼을 깨우사

어린 아이가 새벽에 젖을 찾듯이

주님의 구원을 지치도록 사모하게 하소서

언제나 푸른 주님의 말씀에

모든 희망을 걸게 하소서. 


2012. 9. 12.

'묵상 >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겸손은 나귀 타고  (0) 2012.09.26
어제의 길, 오늘의 길  (0) 2012.09.09
죽지 않고 사는 이유  (0) 2012.08.22

내가 걸어온 길을 주님께 말씀드렸고

주님께서도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시편 119:26 )




제가 걸어 온 길, 저의 지난 삶, 말과 행동, 심지어 숨은 생각과 느낌까지도

주님께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말씀드리는 이유는

주님께 정보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니라

주님께 저의 마음, 고백, 신뢰, 사랑을 드리고자 해서입니다.

 

주님의 응답, 역시 단순한 동의 이상의

깊은 사랑과 격려, 신뢰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가르쳐 주시는 율례가

오늘 제가 달려 가야할 길입니다


2012. 9. 8.

'묵상 >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영혼이 지치도록  (0) 2012.09.13
죽지 않고 사는 이유  (0) 2012.08.22
하나님의 뜻  (0) 201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