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주님의 집에 서 있는 주님의 모든 종들아, 주님을 송축하여라

성소를 바라보면서, 너희의 손을 들고 주님을 송축하여라.

시편 134:1-2/새번역



1. 밤에 

'성전에 올라가는 순레자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불렀던 노래이다. 오늘날과 같이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날들을 길에서 보내야 했다. 밤이 되면 길이나 여관에서 잠을 자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의 인생길에도 밤과 같이 앞을 볼 수 없는 때가 있다. 우리의 영성의 길에도 기쁨과 위로가 사라지고 황량함 가운데 거하게 되는 '어둔 밤'이 있다.


2. 주님의 집에 서 있는

아직 예루살렘의 성전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순례자들은 밤에 '주님의 집'에 있었다. 어두운 밤, 앞을 볼 수 없고 위로와 기쁨이 사라진 길 위에서의 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집에 있음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 때로는 부재 가운데 더 깊이 현존하시는 그곳이 주님의 집이다. 벧엘이다.


3. 주님의 모든 종들아

보통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의 길은 이웃과 가족들이 함께 가는 공동체 여정이었다. 그들은 그길을 걸어가며 자신들이 주님의 종,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시 확인했다. 주님의 종,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주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주님과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우리의 길은 함께 다른 이들과 함께 걷는 공동의 여정이다. 


4. 성소를 바라보면서

길 위에 있더라도, 밤을 경험하고 있더라도, 순례자들은 성소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순례의 목적지, 우리 인생의 결승점 그곳을  바라보자. 이땅에서의 여정이 모두 끝나고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그분의 품에 안기리라는 소망, 인생의 방향을 놓치지 말자.


5. 주님을 송축하라

길 위에서도, 밤에도, 불안해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주님을 송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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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5. 월


1. 지난 며칠 동안 비도  간간이 내리고, 온도도 높아서 그런지 참 잘 자란다, 잡초가. 잡초는 씨를 뿌리지 않아도 수백 개의 싹을 틔우고  키가 쑥쑥 크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하면 상추들은 더디게 자라는 것 같다. 아마도 마음 때문이겠지? 상추는 자라기를 기다리고, 잡초는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상추와 잡초를 모두 객관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이 내겐 없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도 내 마음의 기대와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요즘 내가 교회를 섬기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들의 돌파구도 이런 마음을 얻음으로써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더 경작되어야 한다. 이기심과 교만과 편견이 뽑혀지고, 그 자리에 영적 자유가 싹터야 한다. 


2. 두 주 전 옥수수를 하나 훔쳐간 뒤에 옥수수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너구리가, 어젯밤 사이 남은 옥수수들을 습격해서 모두 아작내 버렸다. 이제 한두 주만 있으면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자랐는데……. 넘어지거나 동강이 난 옥수숫대들을 모두 내 손으로 뽑아 내었다. 괜히 죄없는 너구리 라면을 앞으로는 먹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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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1. 목


친구 분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서 Emeryville에 있는 Lush라는 가게에 들렀다. 평소에 사소한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가 그분이 이전에 생일 선물로 수제 비누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는 말을 들은 것을 기억해 내었다. 


난 그분이 직접 요청하신 것도 아닌데 굳이 집에서 먼 곳까지 가지말고 가까운 곳에서 적당한 선물을 사서 드리자고 했다. 내 기준에 남자에겐 비누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래도 선물을 받으실 분이 좋아하시는 것을 사드리자고 해서 시간을 들여 에머리빌까지 왔다. 


아내가 5리를 함께 가기를 원하는 자와 10리를 동행하라는 복음서의 말씀을 들이대는 바람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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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8. 월. Columbus Day



바람도 쐴 겸 그리고 돌아 오는 주일에 있을 청년부 소풍 사전 답사 겸 해서 Lake Chabot에 갔다. 조용한 호숫가를 산책하고 아내가 준비한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넉넉한 호수 위를 거닐던 바람이 우리의 마음도 여유롭게 해 주었다. 우리 가정이라는 자동차에 누군가를 태워 라이드를 제공하고, 끝까지 함께 가지 못하더라도 그가 내릴 곳에 도착하면 기쁨으로 보내주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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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13-18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요구한 백성들을 나무랐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어 그들의 죄가 큼을 밝히 보여주셨다. 사울도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왕이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들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사울은 침묵했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 진정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선포하며, 왕이 되기를 겸손히 거절하고 왕위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릴 엄두를 전혀 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왕이라는 명예와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였을까? 


만약 사울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고 해도 백성들이 다시 다른 왕을 요구했을지도 모르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이에 순종하라고 강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 순간에 침묵하지 않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했다면, 그리고 그의 나라를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두고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만 삼았다면, 그의 비극적인 결말이 상당히 바뀌지는 않았을까? 다윗의 등장 이후 왕위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였던 초라한 사울왕의 모습이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젊은 사울의 침묵 속에 이미 보이는 듯하다. 무엇이든지 그 시작이 참 중요하다. 나는 정말 말해야 할 때에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에 필요 없이 말하지는 않는가?


201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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