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빼기

날적이/그림일기 2012. 10. 27. 08:02

2012년 10월 26일 금.


집에 있는 유일한 화분. 이름은 모르겠지만 선인장과라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버틴다. 벌써 6개월, 우리집에 온 화분들 중 장수하고 있다. 목마를까봐 오랜만에 물을 한 가득 주었더니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다 흘려보낸다. 화분 속에 가두어 놓아 봤자 뿌리만 썩을 뿐. 다음에 주인이 때가 되면 또 물을 주리라 믿는 것일까? 


음식, 잠, 운동, 공부, 쉼, 독서, 기도, 만남, 대화, 고독, 글쓰기, ……… 모두 필요한 것들인데 지나치면 오히려 나를 썩게 만든다. 내가 과감히 흘려 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난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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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4. 수.


오전에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가 오랜만에 버클리 마리나에 들렀다. 가로등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새집이다. 빈 들판을 지키고 있는 새집처럼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집이 되어주는 공동체를 생각해 본다. 그러러면 비어 있어도 외로워 하지 말아야 하고, 머물던 이가 떠나가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집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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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30. 목. (1)


호텔에서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토마스 머튼 센터가 있는 벨러마인 대학으로 차를 몰았다. 라디오를 켜니 낯익은 한국어가 들려온다. "오빤~ 강남 스타일~" 한국 대중가요가 미국의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가수 싸이의 성취에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내가 쓴 학위논문 두 권이 조금 헤매다가 도착한 머튼 센터의 논문 서가에 꽃혀 있는 것도 신기하고 뿌듯했다. 하나는 한국어로, 다른 하나는 영어로 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학위논문을 더 쓰기 위해 이곳에 자료를 찾으러 왔다. 한국 교수님들 몇 분의 이름들도 논문 서가에서 보이고, 한국어로 번역된 머튼의 책들도 유리장 안에 보관되어 있다. 


센터에는 머튼이 직접 쓴 글들, 머튼에 관한 글들 외에도 각종 자료들이 보관 되어 있다. 머튼이 수도원에서 한 강의들을 녹음한 테이프들과 CD들, 그가 그린 그림들과 찍은 사진들, 그가 사용하던 소수의 유품들과 그의 모습을 담아낸 청동상들, 그림들, 퀼트 등 다양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미국 내에 머튼이 직접 쓴 자료들을 특별히 소장, 전시하고 있는 대학 도서관들이 몇 곳 있지만 그 중에서도 벨러마인 대학의 토마스 머튼 센터와 기록물 보관소는 가장 규모가 크고, 머튼 유산위원회(The Merton Legacy Trust)가 관여하는 공식 기록물 보관소이다. 머튼은 이렇게 그가 남긴 글과 유물들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이들에 의해 지금도 세상 사람들과 대화하며 숨쉬고 있다. 


그동안 몇 번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있는 센터 책임자 폴 피어슨이 따뜻하게 맞아 준다. 그는 영국 출신인데 마른 몸매와는 달리 악수하는 손에는 힘이 있다. 폴은 수년 전 머튼 학회장을 역임한 유능한 인물이며, 지금 맡은 일이 증명하듯 아주 꼼꼼하고 성실한 머튼 학자이다. 작년에 시카고에서 있었던 국제 머튼 학회 때 직접 인사를 하지는 못했는데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곳에 모인 이백 여 명 중에 몇 안 되는 동양인이었다. 머튼 학회에 참석했을 때에 느낀 것이지만 대체로 머튼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머튼을 즐겨 있는 독자들은 친절하고 사람이 좋은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마음씨 좋은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데 이름을 듣고 보면 아주 명성있는 학자들이다. 머튼의 영성을 공유해서 그런지 그들은 어떤 면에서 머튼을 닮았다. 



미리 준비해간 자료들 목록을 청구하니 금방 찾아다 준다. 빛바랜 종이 위에 그가 직접 타자를 친 글씨들과 손글씨들이 간직되어 있다. 마치 그를 직접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친밀감이 들었고 책장을 넘기는 것도 매주 조심스러웠다. 아마 그는 한국에서 온 한 학생이 이렇게 이곳에 앉아 자신의 글을 신기해하며 읽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자료들의 한 가운데에 와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복사나 사진 촬영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센터가 문을 닫는 오후 5시까지 열심히 자료를 읽고 메모를 해야 했다. 사실 나는 영어로 글을 읽는 것이 더디고, 머튼의 손글씨도 '해독'을 해야할 정도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점심도 거르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배고픔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의 글을 읽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금방 하루가 지나갔다.





2012. 8. 29. 수. (2)


비행기는 다시 덴버에서 루이빌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 읽을 책으로 머튼의 The Sign of Jonas를 선택했다.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 요나의 표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한국어 판을 챙겼다. 번역이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 중에 사전 없이 읽기에는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 사실 머튼의 글, 특히 그의 일기와 같은 사적인 글들은 번역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는 종종 주변의 풍경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글을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서는 수도원 생활이나 가톨릭 전례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새나 꽃들의 이름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 또한 이 책은 1946년 12월부터 1952년 7월까지 머튼의 비교적 초기의 수도원 생활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가 직접 살았던 수도원에서 열리는 이번 리트릿을 위한 최적의 '안내서'가 되리라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오륙 년이 넘었는데 주로 공부를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해서 읽었을 뿐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한국어로 남은 부분을 마저 읽어보리라 마음 먹고 비행기에서 잠 대신 책을 폈다. 


"니느웨로 가는 여행"이라는 제목을 단 프롤로그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는 침묵이 사방에 퍼져있다. 트라피스트 침묵은 그 장소의 돌들에도 침투해 있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흠뻑 적시고 있다." 머튼은 침묵을 사랑했다. 좀더 정확하게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사랑했다. 그 침묵이 단순히 '말의 부재'가 아니라 수도원을 공기처럼 채우고 있는 어떤 '실재'라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애니미즘(animism)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잔소리를 덧붙이자면, 돌들에도 침묵이 침투해 있다는 말은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만큼 침묵에 깊이 젖어 있으며, 침묵의 분위기가 수도원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 구절을 여러 번 곱씹으며 돌들까지도 침묵에 젖어 있는 겟세마니와의 만남을 상상해 보았다.


사실 침묵은 이번 여행의 동행자다. 평소에는 아내와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 붙어서 지내지만 이번 여행은 혼자서 가는 여행이다. 루이빌 공항의 렌터카 회사의 직원들과 시내에서 좀 떨어진 허름한 호텔 카운터의 무뚝뚝한 여직원이 오늘 내가 대화를 나눈 이들의 거의 전부이다. 아, 맞다. 아내가 있지! 그래도 아내와는 계속 전화를 주고 받는다. 주변이 지인들이 혼자 있는 아내를 불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마운 이웃들이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웃은 침묵이다. 평소에는 하루 중 한두 시간씩 주어지는 고독이 반갑지만, 오늘 홀로 먼 곳에 여행을 와 있으니 쓸쓸함이 몰려온다. 집에서 가져온 컵라면과 눅눅해진 바나나로 호텔방에서 저녁을 때우며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 여행을 떠나 오기 전에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잡다한 일들을 하고 나니 벌씨 시간이 많이 되었다. 고작 세 시간이지만 시차 적응을 위해 침대에 누웠다. 내일 아침은 일찍 머튼 센터에 가서 자료를 찾아 봐야 한다. 가져온 머튼의 일기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2012. 8. 29. 수. (1)


새벽 일찍부터 집을 나서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향했다. 베이브릿지(Bay Bridge)를 건너며 옆에 운전하고 있는 아내를 보니, 괜히 혼자 리트릿을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International Thomas Merton Society)에서 주최하는 리트릿이 켄터키(Kentucky)에 위치한 겟세마니 수도원(Abbey of Gethsemani)에서 있다. 겟세마니 수도원은 내가 공부하는 머튼 수사가 1941년 12월 수도회에 입회한 이후에 1968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기까지 평생을 살았던 곳이고, 이번 리트릿은 작년에 시카고에서 있었던 머튼 학회의 발제자들에게 주어지는 흔치 않는 기회였기 때문에 놓치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리트릿에도 참가하고, 루이빌(Louisville) 벨러마인 대학(Bellarmine University)에 있는 머튼 센터에서 공부에 도움되는 미간행 자료들도 찾아볼 계획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내가 공부와 리트릿에 좀더 집중하고 경비를 줄이기 위해 아내는 혼자 집에 남아 있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나를 위해 운전하고 있는 아내의 옆모습을 보니, 이 먼 타국 땅에 혼자 남겨 놓고 가는 것이 미안하고 안스러웠다. 아내는 한국에서 하던 일도 중단하고 이렇게 먼 곳까지 함께 와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날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있다. 


작년 여름, 새벽 비행기를 놓쳐서 열두 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던 적이 있다. 그 때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오늘은 필요 이상으로 빨리 나왔더니 여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비행기는 동쪽으로 날아 올랐다. 어둑어둑하던 하늘이 이내 아침햇살로 가득해졌다. 비행기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을 넘어 캘리포니아를 벗어나자 네바다(Nevada)의 거친 사막이 나타났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황야이다. 하늘 위로 바람과 구름이 지나고, 간간히 비행기가 굉음을 울리며 사막의 침묵을 방해할 뿐,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땅이다. 모래 위에 남겨진 구불구불한 흔적들은 과거에 강이나 내가 지나간 자취일까? 아니면 바람이 남겨놓은 발자국일까? 비행기 아래로 사막을 내려다 보며 4-5세기 마음의 순수함을 찾아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지의 사막으로 들어간 사막의 수사들을 생각했다. 목숨을 걸고 사막으로 들어간 그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사고가 나서 비행기가 사막에 떨어지고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 황량한 사막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머튼은 사막이란 인간의 도시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외에 의지할 존재가 없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말이 실감이 나고도 남는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안 사실이지만 사막은 캘리포니아 동남부터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콜로라도, 뉴 멕시코, 와이오밍 등의 주에 걸쳐서 펼쳐져 있는데 미국 서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두 시간 정도 사막 위를 날고 마침내 푸른 땅이 보이자 비행기가 곧 경유지인 덴버(Denver)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덴버에서 루이빌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내가 싸준 볶음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도 아내는 일주일 동안 한식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잠을 줄여가며 정성껏 도시락을 싸주었다. 아내는 나 자신보다도 내 몸을 더 생각하고 아끼는 사람이다. 밥을 먹으며 성경을 펴서 창세기 28장을 읽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가는 길에 한 곳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천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꿈을 꾸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함께 계실 것과 그가 안전하게 돌아오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야곱은 일어나서 주님이 정말 이곳에 계신데 그것을 몰랐다며 그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고는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그렇다. 모든 곳이 하나님의 집이다. 심지어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도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장 계시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믿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다. 문득 신병훈련소에 갔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약 18년 전, 군복무를 위해 신병훈련소에 갔을 때에 '뭐 이런 곳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와 분리된 담장 안의 세상은 자유와 인간 존중은 없고, 대신 명령과 통제 그리고 인간을 '전쟁물자'로 여기는 비인간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신병훈련소는 정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것만 같은 곳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결과만 간략하게 말한다면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였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에서도 새벽의 차가운 어둠에서도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보면 잠시 스쳐지나가는 여행객들로 가득 찬 이 낯선 공항 대합실도 하나님의 집이 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