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2004년 10월 2일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얼마 전 한 친구로부터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대학동기인데 계획대로라면 내년 봄쯤에 결혼하기로 계획이 잡혀있었다. 일단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사연인즉슨 장인되실 분이 위독하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결혼식을 치루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친구의 장인되실 그분은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또 한 번도 얼굴을 뵌 적도 없다 하지만 웬 일인지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내 친구는 물론 그 여자친구와 가족들 모두가 교회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아무도 그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죄사함을 얻게하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려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곧 다가오는 추석에 부산에 내려가면 몇몇 동기들과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그러고 며칠 후 다른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친구의 장인되실 분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

추석연휴 마지막 날 저녁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만나 식사를 했다. 장례를 갓 치른 친구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는 장인되실 뿐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다. 만일 그 친구가 이후에 하나님을 알게 되어서 그분이 생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워할까? 그 친구가 나에게 “왜 좀더 빨리 나를 억지로라도 교회에 끌고 가지 않았어? 만약 그랬더면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했을텐데……”라고 원망한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에스겔 33장 7-9절)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내가 너를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악인에게 경고하고 깨우쳐서 그가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만일 네가 깨우쳤는데도 그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 죽고 너는 생명을 보전하겠지만, 네가 깨우치지 않아 그가 죄악 중에 죽으면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무서운 말씀이다. 어쩌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 전에 돌아가신 그분 뿐만이 아니라, 내가 경고하여 깨우치지 않은 많은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치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게으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해야 한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주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를 우리 손에서 찾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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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주후 2004년 9월 26일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채워야 한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중학생들이랑 신촌에 있는 민들레 영토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새문안교회에서 학원선교의 일환으로 서울 시내 10여곳의 중·고등학교 특별활동(CA)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기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성산중학교 기독교문화연구반’인데, 반갑게도 지도교사로 열심히 수고하시는 분은 제작년까지 우리교회를 섬기셨던 김동호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김영숙 선생님이시다.


중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청년부를 주로 섬기다보니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한 꺼번에 상대하려면 늘 목이 쉬고, 진땀이 빠진다. 특히 우리반의 구성원들 중 5분의 2정도는 교회에 다니지 않고, 특별활동을 선택할 때 가위 바위 보에 밀려 빈 자리를 찾아 들어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의욕도, 관심도 별로 없다. 그래서 기독교문화연구는 고사하고, 복음을 전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학기 내내 고전하다가 2학기 때에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 아이들을 몇 개의 모둠으로 편성해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CA를 조금 일찍 마치고 한 모둠씩 돌아가며 가까운 민들레영토에서 모임을 가지는 모험(?)을 감행했다. 감사하게도 그 방법이 효과가 있어서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나님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이전에는 일정 기간 동안 교회에 다니던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대부분이 ‘영적 무관심’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이가 한 명 있는데, 그 아이와 아주 절친한 친구는 모태 신앙이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그 아이를 전도해야 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을 이들의 영적 무관심을 깨뜨리고, 교회로 인도할 사람이 이들 주변에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조차도 이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무관심한 채 그저 ‘친한 친구’로 만족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들의 손을 잡고 억지로라도 교회에 데려간다면 이들이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없다. 억지로 친구의 손을 잡아 끌면 당장 그 친구로부터 원망과 짜증을 듣게 될 지는 몰라도, 그가 교회에 나와서 진정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친구로부터 큰 감사를 받을 수 있다.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당장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런 모험은 감행하려 하지 않는다.


혹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우리 조 다모이기’, ‘총전도주일’을 앞두고서도 이 일들을 나와 관계 없는 일로 생각하고 그저 나의 구원으로만 만족하지는 않는가? 늘 부대끼는 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을 강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짜증을 두려워하여 몸을 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통곡하며 회개할 일이다. 가슴을 치며 부끄러워할 일이다. 주님은 천국문이 닫히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들어오기를 애타게 원하신다.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천국잔치 자리를 채우기 원하신다. 일단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잔치의 즐거움, 즉 그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



주인이 종에게 말하였다. ‘큰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누가복음 14:23, 표준새번역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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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시편4편

어제 밤 리더모임을 마치고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차 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짐승이나, 귀신들린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걸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차가 역에 정차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경찰 두 명이 재빠르게 들어와서 한 아저씨를 끌어낸다.끌려나가는 그는 손에 술병을 들고 만취한 상태였는데 누군가가 신고한 모양이었다.

끌려나가 플랫폼에 퍼질고 앉아 있는 그의 비상식적이고 무례한 행동에 비판의 생각을 던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초라한 행색의 그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얼마나 절망 가운데 있으면 저렇게 절제력을 잃고 망가진 채로 살아가고 있을까?"

며칠 전 20대 대기업 직원들의 평균임금은 상당히 올랐지만, 체불임금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즉,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저기 끌려나가 아저씨도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파탄이 나서 저렇게 막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극한 절망과 환란 가운데 처하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묵상 본문인 시편 4편을 통해 고난 중에 범죄치 말고, 깊이 숙고하고, 침묵하라고 말씀하신다. (4절, NRSV) 그리고 이어 의의 제사를 드리고 주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신다.(5절) 극한 고난 중에 있더라도 그 절망감과 또는 충족치 못한 욕구로 인해 범죄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예배하고, 주님을 더욱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평안히 눕고 자는 그 일상적인 일이, 특별하지 않아 그냥 사소하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시4:8, 시3:5)

마음이 어려운 오늘일수록 더욱 깊이 묵상하며, 나의 신뢰를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께 두어야겠다. 막무가내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예배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겠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붙드심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기뻐해야겠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7절)


200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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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의 추천도서

예수님을 경험하는 영성훈련

KNOWING CHRIST

 알리스터 맥그래스, 두란노, 11,000

 

가을의 시작, 9월을 맞이했다. 흔히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꼭 가을에만 책을 읽으라는 법은 없지만, 지난 여름 제주선교와 여러 가지 바쁜 일들로 많이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들고 독서에 대한 배고픔을 가지고 읽어 보자.

 

지난 8월 넷째 주 4부예배를 통해서, 영성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구체적인 훈련의 방법을 찾지 못해 제대로 훈련하고 있지 못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에 우리의 영성훈련에 좋은 길을 안내해 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서 제임스 패커의 뒤를 이은 21세기 최고의 복음주의자로 손꼽힌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지성적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지성의 한계 속에서 메마른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 한계를 넘어 예수님을 깊이 경험하고 풍부한 영성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사용한 영성 훈련의 방법들을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가 보면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에도 자주 밑줄을 긋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이 책은 훈련을 동반해야 한다. 그저 책을 읽기만 해서는 별로 남지 않는다. 한국인의 많은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받고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치료는 잘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병은 낫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고 그 속에 있는 방법들로 훈련하지 않는다면, 경건에 이르지 못한다. 혼자서는 어렵다. 그러므로 소그룹이 함께 훈련하고, 또 개인적으로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도 좋다. 어쨌든 이번 가을, 큰 맘 먹고 꼭 이 책을 읽고 또 경건의 훈련에 정진하자!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게재




예수님을 경험하는 영성훈련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출판사
두란노 | 2003-10-06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차세대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이 책에서 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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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칼럼

2004년 9월 4일

 

더불어 사는 삶

 

월요일 아침, 잘 안 쓰는 물건들을 쑤셔 넣은 상자 속에서 등산화를 찾아내었다. 그 전날 교회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바라본 북한산이 아침부터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얼마만의 등산인가? 작년 제주선교 때 한라산을 오른 후 처음이다. 그러니까 일년만이다. 간단하게 배낭을 꾸려서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집에서 걸어서 약20분쯤 가면 북한산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어디가 등산로인지도 알지 못하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어딘가에 분명 길이 있으리라…

산 입구에서 “군사지역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을 만났다. 낭패다! 그런데 반대쪽으로 길이 나 있다. 한 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중간에 역시 같은 표지판을 몇 번 만났지만, 피해서 조심조심 올라갔다. 이러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온 길을 몇 번이고 돌아보며 기억하려 애썼다. 

아무도 없는 산 길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한 아주머니가 위험하게 경사가 심한 산비탈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다. 물통을 메고 지나가는 할아버지 한 분이 아시는 듯 인사말을 건넨다. “오늘은 많이 주웠어요?” 아주머니는 도토리로 제법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어 보인다. 주택 인근 야산에서 이런 풍경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산뿐만 아니라, 대학 교정 등 도토리가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선가 ‘봉다리’를 든 아저씨, 아줌마들이 나타나 도토리를 줍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신문에 이런 보도가 나기도 했다. 사람들이 너무 도토리를 많이 주워서 다람쥐들이 겨울동안 먹을 양식이 부족하다는 것 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도토리들이 겨울을 위해 열심히 주워다 모아 놓은 것을 아예 통째로 훔쳐(?) 가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참 더불어 살 줄을 모른다. 사람에게 도토리는 꼭 없어도 되는 먹거리이지만,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식량이다. 자기가 열심히 모아놓은 식량을 모두 빼앗긴 다람쥐는 얼마나 허탈하고, 절망적일까? 왜 인간들은 자기만 알고 다른 생명체들의 소중함은 알지 못할까? 우리가 이렇게 환경을 파괴하면 나중에는 그 대가를 치루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할까? 

산길을 계속해서 오르다 보니 “생태계 보호를 위해 샛길 폐쇄”라고 쓰여진 간판도 여러 개 서 있다. 그리고 그 샛길에는 이름모를 새들이 (날지 않고) 뛰어다는 것이 보인다. 이것은 곧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말이다. 그냥 곱게 산길을 다니면 그렇지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점잖게 지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연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우리 인간에게 이 자연계를 맡겨 주셨다. 우리에게 이 자연계를 잘 보존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러지 못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모든 자연계를 더럽히고 파괴시켰다. 그래서 이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출입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 나라는 어느 개인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주시고, 또 이들에게 자녀를 주시고 또 이웃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기를 원하셔서 이다. 더불어 사는 것,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다른 이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인 것을 기억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지만, 나만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왼발을 다쳐서 절룩거리며 걸으면 오른 발이 고생하게 된다. 이것이 한 몸이다. 한 몸은 함께 사는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더불어 사는 삶을 연습하자. 이사야 35장에 나온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노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회복을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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