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바람소리/목회칼럼 2004. 12. 26. 17:00

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2004년 12월 26일

 

선 물


                                                                    
성탄절을 맞아 여기저기서 선물을 주고 받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는 죄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공동체적으로도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며칠 전 제2기 YDTS 아웃리치를 강원도 고성, 대진중앙교회로 갔지요. 그곳 교회 어린이들 성탄축하공연 준비를 도와 주었습니다. 함께 간 우리 지체들이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지막 날 저녁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성탄 카드를 직접 만들어 정성스럽게 써서 주고, 또 선물도 주었지요. 선생님들의 사랑이 담긴 카드와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그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제 안에도 따뜻한 기쁨이 피어올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바쁘게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여자 아이 세 명이 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짝지에게 쑥스러운 듯이 쵸코우유를 선물해주고는 “선생님! 여름 성경학교 때도 꼭 오세요”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참, 우리 팀원들도 마지막 날 저녁 맛있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대진중앙교회에는 교회학교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어려운 교회 형편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며 아이들과 교회를 섬기시는 집사님이십니다. 그분은 매일 새벽예배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교회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신데, 수요저녁예배 때에는 가난한 마음으로 진실한 기도를 드림으로 함께 예배 드린 모든 이들이 마음이 울리고, 큰 은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그날 저녁 우리팀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맛있는 치킨으로 깊은 밤 고픈 배를 채워주셨지요. 그리고 그곳 교회의 담임교역자 김성덕 전도사님은 저희들에게 시원하고 멋진 겨울 밤바다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파도소리가 가득한 바닷가에서 저녁모임을 할 수 있었답니다.


이번 아웃리치의 선물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날 아침 우리팀은 잠깐 한 화장품 가게를 들렸습니다. 그곳은 우리들에게 치킨을 선물하신 선생님께서 일하시는 곳이지요. 팀장님과 몇몇 자매들이 그곳에 들어가 선생님께 어제 받은 선물의 답례로 음료수 세트를 사서 선물로 드렸지요. 그리고 우리 팀원들은 이번에 절약하여 남긴 재정을 서울로 돌아와 대진 중앙교회에 필요한 전도물품들과 전도지와 그곳 교회 전도사님과 사모님을 위한 선물을 구입하여 보내는데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부장 집사님의 말씀대로 그 마음들이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습니다.^^


이 외에도 아웃리치 기간에 주고 받은 선물들이 있지만 다 기록하지는 못합니다. 어째든 선물은 선물을 낳는다는 걸 우리는 배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날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님을 부어주시지요. 또한 우리에게 많은 은사와 다양한 재능들을 선물로 주셨지요. 그 선물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와 달란트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가 고백하는 찬양들의 가사처럼 우리의 생명까지 드립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 삶에도 선물들이 가득합니다. 

어제는 즐거운 성탄절이었습니다. 
성탄절이 즐거운 이유는 이렇게 선물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이라는 선물과 또 말로 다 할 수 없는 다양한 선물들, 그리고 옆으로는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선물. 참 즐거운 성탄은 이렇게 하나님과 공동체의 선물에 동참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혹시 나에게는 주님과 다른 이들에게 줄 선물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나요? 그렇다면 다시 찬찬히 자신을 살펴보세요. 비록 호주머니와 저금통장은 비어 있을 줄 모르나 우리에게는 분명 남에게 나눌 수 있는 선물이 있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셨지요

마지막으로 영등포교회 청년부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난 2년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정말 귀한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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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우리 조

- 2004년 소그룹모임을 마치며 -


 

오늘은 2004년의 마지막 소그룹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지난 1월 첫주 소그룹이 새롭게 편성된 이후로 어느 새 50여주가 훌쩍 지났네요. 그동안 여러 가지 일정들로 소그룹모임을 하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소그룹모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썼던 한 해였답니다. 작년 말 임원들과 함께 올해의 주요방향을 의논하며, 소그룹모임 활성화에 그 중심을 두었고 이를 위해 가능한 토요일 오후에 다른 행사를 잡지 않는 등 여러 방면으로 소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애를 썼지요.


여러분의 소그룹은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내었나요? 6개월씩 두 번의 소그룹 편성을 통해 여러 지체들을 만났고, 또 여러 권의 교재를 공부하였습니다. 조에 따라 MT나 친목회를 따로 가진 조들도 있었지요. 혹시 소그룹 참여가 띄엄띄엄이라 그 기억도 띄엄띄엄인 분은 없으시나요? ^^; 어디 아쉬움이 없는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하지만 올해를 마무리하며 막연한 후회나 만족보다는 정확하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오늘 소그룹 모임 때에는 간단하게나마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기대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전체적인 평가와 전망을 간략히 내려볼 것입니다. 먼저 성과를 살펴볼까요? 올해(넓게는 작년까지 포함해서) 소그룹을 통해 얻은 성과는 첫 번째, 소그룹이 신앙의 수준에 따라 세분화 되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랍니다. 믿음마을(성장반), 소망마을(입문반), 사랑마을(새가족반)으로 편성되어서 각각 그 수준에 맞는 내용으로 성경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좀 더 세분화되면 좋겠지만 현재 우리 청년1부의 규모와 형편에는 적당한 듯합니다. 그 중 사랑마을이 작년 하반기에 이어 올 하반기에는 보다 왕성히 활동함으로 여러 명의 새가족분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소그룹 평균인원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 우리가 감사해야할 일이지요. 작년 상반기는 전체 6개의 소그룹에 각 조당 평균인원이 25(군지체포함)이 넘었는데, 지금은 12개의 소그룹(사랑마을 포함)에 각조당 평균인원이 14명으로 줄었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많은 리더들이 세워진 것이 참 감사할 일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리더들이 교사나 임원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맡고 있어서 리더에만 집중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지요. 그러나 이런 부담 속에서도 열심을 다한 리더들, 우리가 감사하고 격려합시다.

 

다음으로 아쉬운 점을 살펴볼까요? 먼저 내부적으로 청년들의 소그룹에 대한 열의가 그 만큼 높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소그룹마다 차이는 있지만, 소그룹과 성경공부에 대한 사랑과 참여도가 기대만큼은 높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쉽답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토요일 오후에 여러 가지 일정이 많아 자체 행사를 많이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소그룹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토요집회가 오후 3:30으로 30분 당겨져서 여유가 조금은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엔 소그룹을 이렇게 할까합니다. 소그룹의 기본적인 틀은 올해의 틀을 유지하되, 가능한 리더가 확보되는 대로 소그룹 평균인원을 10명이하로 줄이고자 합니다. 그래서 소그룹 멤버들이 한 눈 안에 다 보일 수 있게 해서,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소그룹의 명칭을 에서 가족으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가령 혜영 조라고 부르는 것을 혜영 가족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그만큼 소그룹멤버 간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내년에 조 안에 특별히 헬퍼를 세우지 않고, 모든 조원이 헬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서 계신 곳의 천장으로 달아내림으로 구원을 얻게 했던 친구들처럼(2:1-12) 소그룹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믿음에서 떠난 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과 회복되고 구원을 얻는 일들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또한 역동적인 소그룹을 만들기 위해 내년엔 성경공부를 좀더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소그룹의 역동성은 먼저 소그룹 안에 말씀이 역동적으로 그리고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공부 예습·복습하기를 권장하고, 조별 말씀 암송대회 등을 개최를 고려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한 교제가 풍성히 이루어지고, 그것이 외부로 실천되어질 때 그 소그룹의 역동성은 더해갈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교역자나 임원 그리고 리더들만의 생각과 노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이 일에는 무엇보다 형제,자매 여러분의 애정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리더와 조원 모두가 함께 한 마음을 품고 소그룹에 참여하고 서로를 섬길 때 우리는 또 하나의 멋진 가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200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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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보는 세상

날적이 2004. 12. 17. 17:00

신대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전도사님들과의 모임에 갔습니다.
그중 한 분은 아들이 무려 3명이나 됩니다. ^^ (부러움)
그런데 그중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정우가 제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더니 자기가 사진을 찍겠다고 합니다.
저는 둘째 정우에게 카메라를 주고 셋째 정웅이와 함께 포즈를 잡았지요.

그런데, 둘째가 찍은 카메라를 받아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당연히 저와 동생이 함께 나올 줄 알았는데
둘째는 저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동생만 앵글 안에 넣었습니다.
양손의 브이가 부끄럽게 말입니다. 하!하!하!




역시 형제라, 한 번씩 만나는 삼촌보다 동생을 더 찍고 싶었나봅니다.
비록 카메라 앵글 속에 나타나는 세상이지만
이렇게 아이가 보는 세상과 제가 보는 세상이 다릅니다.


2004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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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2004년 12월 11일


등에서 내려서 걸리기


월간묵상집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재미있는 글이 실려 일부를 소개한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러 어스름한 저녁에 나온 골목길에서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예쁘장한 강아지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예쁜 얼굴에 고운 목소리 없다던가. 어린 아들의 손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작은 입을 가졌지만 짖어대는 소리는 꽤나 앙칼졌다. 개는 우리 주변을 빙빙 돌며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를 쳐다보고 짖고 또 짖었다. 두려움과 엄살이 조금 심한 딸아이는 그 때마다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 딸이 소리를 높이면 개도 덩달아 더 높은 음으로 짖었다. 딸이 엄마 뒤로 숨으면 개도 얼른 뒤로 돌아가고, 앞으로 오면 어느새 앞에 와서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빙글빙글 돌며 개를 피하고 있는 누나에게 어린 동생이 야무진 한 마디를 했다. “누나, 무서워하지 마 하나님이 도와주신대.” ‘엄마! 기도하면 안 무섭지’라고 능청을 떨며 누나에게 핀잔을 주듯이 말한다. 밤마다 잠들기 전에 불을 끈 깜깜한 방에서 아이들이 무섭다고 투정을 부리면 우리 부부는 늘 기도하면 안 무섭다, 기도하면 나쁜 꿈 안 꾼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가르쳤다. 어린 아들이 바로 그 말을 내뱉은 것이다. 개를 피하느라 이리저리 돌던 누나는 동생의 이 말에 화가 났나 보다. 누나가 ‘너야, 엄마 등에 업혀 있으니 안 무섭지!’라고 툭 내 뱉는다. 얼마나 우스운지. 엄마 등에 업혀서 쫑알거리는 동생의 정곡을 콕 찔렀다.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아들의 말이나, 엄마 등에 업혀 있으니 안 무섭지 않느냐는 딸의 대답이나 모두가 걸작이었다.

피할 곳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라고 말하는 아들의 능청은, 피할 곳 없이 무서운 딸에게는 조롱으로 들렸나 보다. 하긴 조그만 개가 아무리 뛰어도 닿지 않는 곳, 엄마 등에 업힌 아들이 뭐가 무서우랴. 작은 개를 만나 반응하는 두 자녀로 인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 속에 살면서, 그들을 무섭게 하는 세상을 무서워 말라고 권면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안전한 피할 곳에서 두려워하는 친구들에게 ‘기도하면 안 무섭지’라고 말하는 사람이냐?

- 엄마 등에 업혀 있으니 안 무섭지(김병년) : ‘시냇가의 심은 나무’(IVP) 2004년 12월호 25쪽에서 

가끔 어린 조카들과 함께 다니다보면 아이들은 아무래도 직접 걷는 것보다 업히거나 안기는 것을 좋아한다. 달래고 구슬려서 내려놓아도 조금 걷다가 다리가 아프거나 높은 계단이 나오면 안아달라고 팔을 벌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아주 어린 때에야 안아달라고 하지 않아도 번쩍 들어서 안고 가지만, 조금 크면 아이를 안아주는 것 대신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계단을 오르내린다. 그래야 아이가 걸음을 배울 수 있다. 언제까지 안겨서, 업혀서 다닐 수는 없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우리를 등에 업으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신다. 그러다가 우리의 신앙이 좀 커갈 때에는 슬며시 우리를 등에서 내려 놓고 걷게 하신다. 우리의 입장에서야 계속해서 하나님 등에 업혀있고만 싶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업고만 계시다면, 우리의 믿음은 항상 제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땅에 내려 직접 걸음으로써, 그리고 위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과 같은 위험을 직접 직면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신다. 등에 업혀서 하는 기도보다 직접 땅에서 위험을 직면하고 하는 기도가 더욱 절박하고, 큰 믿음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 많은 개들이 달려드는 바닥에 우리를 내려놓으신다. 이처럼 직접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야 말로 다른 이들에게 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닥에 내려 놓으신 그 순간에도, 사방에 사나운 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그 곳에서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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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2004년 12월 4일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좋아하는 물건에 집착하거나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사상, 가치와 같은 무형의 것에도 애착을 가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우리는 ‘식탐(食貪)’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애착은 우리 삶에 의욕과 활기를 불러 넣어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는 우리가 주님을 뒤 따라 가는 삶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한 마음이 애착을 넘어서 집착으로 이어지면,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그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영성훈련’ 또는 ‘경건훈련’이 필요하다. ‘영성훈련’의 목적은 바로 “모든 부적합한 애착(inordinate attachment)을 제거하고, 그 후에 자신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개선하는데 있어서 날카로운 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기 위하여 영혼을 준비시키고 대비하는” 데에 있다. 즉, 자기 안의 부적합한 애착을 발견하고,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것이 영성훈련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때에 자신의 애착을 발견한 뒤의 반응에 따라서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세의 영성가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는 그의 책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에서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했다. 첫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애착물을 버리기를 원하나 죽는 순간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둘째 사람은 애착물을 버리려고는 하나 가장 좋은 대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즉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결단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에게로 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셋째 종류의 사람은 일체의 애착물에서 떠나는 사람이다.


  즉 첫 번째 사람은 애착물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하여서 죽기까지 그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애착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끝까지 자기 손에 꽉 쥐고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우유부단하여 그 애착물을 버리려고는 하지만, 당장 실천하지 못하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결단하여 환경을 넘어 헌신된 삶을 살지 못하고, 그저 환경이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 사람은 그 즉시 결단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이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당장 모든 집착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에 해당할 것이다. 이럴 때는 자신이 집착하는 것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두고 있다면 결코 그것에서 떠날 수 없다. 나의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세상의 안락과 영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출 때에 과감히 모든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2000년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고,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내고 있다. 이 때에 우리의 시선을 더욱 주님께 고정시키자. 그러할 때에 우리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영적 자유를 누리고, 오직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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